[선교 동행취재] 인천태국인교회 윤윤경 선교사

남동공단 태국인 노동자 신앙 격려하며 고충 해결하는 ‘전천후 천사’
“현지보다 더 큰 선교효과 … 한국교회에 주어진 기회 인식 넓혀야

“사와디 카”(Sawadee Kha)
한겨울 인천시 남동공단은 밤이 일찍 찾아왔다. 윤윤경 선교사(GMS)는 한 도금공장 앞으로 다가서더니, 스스럼없이 굵은 철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건넸다.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안에는 화학약품을 다루느라 고무로 된 긴 앞치마에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세 명의 근로자가 작업에 한창이었다. 근로자들은 모두 태국인들로, 윤 선교사의 방문이 낯설지 않은 듯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3년 전에 한국에 온 싹(40세) 씨는 윤 선교사가 세운 인천태국인교회의 교인이다. 아직 신앙이 깊지는 않지만, 윤 선교사는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인 그가 대견하기만 할 따름이다.
“겨울이 제일 힘들어요. 발이랑 귀도 시렵고….”

▲ 인천태국인교회 교인들이 성탄절 예배 후 새해 인사를 전하고 있다

싹은 일하는 게 힘들다면서, 그렇지만 교회에 나가니까 재미도 있고, 따뜻한 정도 느낀다며 교회 자랑을 늘어놓았다. 윤 선교사가 숙소에 인터넷도 개설해주고, 성경도 사주었다고 했다.
아직 교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싹의 동료들도 윤 선교사가 반갑기는 마찬가지. 태국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친근한 동네 사람들 같았다.

윤 선교사의 다음 방문지는 공장 위에 있는 기숙사. 전등이 없어 어두컴컴한 계단을 오르자 옥상이 나왔고, 옥상 양쪽으로 컨테이너 대여섯 동이 늘어서 있었다.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태국인 근로자들이 단체로 묵는 기숙사였다. 옥상 위로 지붕이 있긴 했지만, 지붕과 옥상 난간 사이로 매섭게 몰아치는 겨울바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식당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 안에는 두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윤 선교사는 이번에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요새는 교회에 왜 안 나와요? 언제 나올 거예요?”
윤 선교사의 말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지금은 바쁘다며, 나중에 가겠다고 했다. 한국인이나 태국인이나 교회에 못 나가는 핑계는 거기서 거기다. 남자는 미안했던지, 식당을 나서는 윤 선교사를 향해 “사와디 캅”이라며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태국어로 태국인 마음 위로
윤윤경 선교사는 남동공단 태국인 근로자들에게 “천사”라 불린다. 아파 병원에 가야할 때나 밀린 월급을 받아야 할 때, 그리고 집을 구해야 할 때 근로자들은 윤 선교사를 찾았고, 윤 선교사는 그들을 대신해 한국인들을 만났다.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도 필요할 때는 늘 연락을 해요. 한번은 휴대폰으로 병원 의사한테 아픈 데를 통역해주기도 했어요.”

▲ 윤윤경 선교사는 매주 수요일 저녁 인천시 남동공단에 있는 교인들과 태국인들을 심방하고 있다

또 다른 도금공장에서 만난 쎅싼(39세) 씨도 윤 선교사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다. 김포에서 살던 쎅싼은 공장에서 월급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윤 선교사 이야기를 듣게 돼 도움을 요청했고, 윤 선교사는 자기 일처럼 앞장서 주었다. 그 후 남동공단으로 온 쎅싼은 인천태국인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찬양팀에서 드럼을 치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이다.

윤 선교사가 남동공단에서 태국인 사역에 나선 것은 2015년. 서대문교회(장봉생 목사) 파송으로 태국에서 6년 동안 사역한 윤 선교사는 2008년부터 국내 외국인 선교로 사역 방향을 돌려,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유학생 사역을 했다. 인천으로 이사 온 후에는 태국에 있는 김문수 선교사(GMS)의 제자로, 한국에 파송된 태국인 나나폰 선교사와 동역을 시작했고, 2015년 한 상가교회 오후 시간대를 빌려 태국인 예배를 시작했다. 인천태국인교회였다.

“2015년 1월 한 달가량을 남동공단에서 태국인을 찾아다녔는데, 도무지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어떤 경비 아저씨가 우리가 불쌍했던지 어디 어디 블록을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가보니까 정말 태국인들이 있었어요.”

윤 선교사는 제자뻘인 나나폰 선교사와 함께 주중에는 태국인들을 만나러 다니고, 주일에는 함께 예배하고 태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태국인들과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수요일 심방도 초창기 때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이 근로자들이라 저녁이나 밤에만 심방을 할 수 있었지만, 공장이며 기숙사며 가리지 않고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고충을 들어주고, 신앙을 격려했다. 나나폰 선교사는 지난해 7월 태국으로 돌아가 이제는 윤 선교사 혼자 사역을 도맡아 해야 하지만, 그동안 제자훈련을 통해 든든한 리더들이 두서너 명 생겨 힘이 되고 있다.

“심방을 가면 보통 밤 12시까지 다녀요. 여자 싱글 선교사라 주위에서 걱정도 하시는데, 제가 별로 겁이 없어요. 태국에 있을 때도 슬럼가에 자주 가고 그랬어요.”

윤 선교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당연히 사역의 열매들이다. 현재 인천태국인교회 교인들은 20여 명으로 대부분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처음 들었고, 교회 역시 처음 출석하는 사람들이다. 아내와 함께 인천태국인교회에 나오고 있는 파커폭(32세) 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교회라는 곳을 알지도 못했고, 태국에 있었다면 아마 교회에 안 다녔을 것”이라며 태국 현지에서는 불교문화로 인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선교는 이 시대의 기회
사역을 하는 동안 힘든 일도, 눈물겨운 일도 많았다. 한번은 태국인 근로자 열 명이 한꺼번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잡혀 강제추방 명령을 받았다. 모두들 한두 번씩은 교회에 나왔거나 나오는 이들이었다. 윤 선교사는 공장주를 찾아가 월급을 받아주고, 비행기표를 마련해주고, 짐을 정리해 전달해주며 떠나는 이들을 위로했다.

윤 선교사는 태국인 근로자 사역을 하면서 디아스포라 선교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됐다. 선교지에 나가 선교를 하는 것보다 선교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 인천태국인교회 교인들이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있다.

“한국에 태국인만 10만명 가량이 있어요. 우리가 10년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증가세가 훨씬 가팔라요. 외국인 선교는 정말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전략이고 기회에요.”

윤 선교사는 특별히 외국인 선교에 있어 해당 지역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이 상대적으로 장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외국인들과 언어가 소통되고 문화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선교사는 “태국에 한국인 선교사들이 400명 정도가 있는데, 많은 분들이 한국에 돌아와 사역하면 좋겠다”며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선후배 선교사들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선교사는 덧붙여 귀국 선교사들에 의한 외국인 선교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파송교회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외국인 사역자도 같은 선교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현지인을 초청해 사역을 하는데 대부분 물량공세를 할 때가 많아요. 교회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할지 모르지만, 신앙과는 관계가 없어요. 선교사 출신들은 그 나라도 알고, 한국도 아니까 주중에도 외국인들을 도울 수 있고, 사역에도 훨씬 효과적이죠.”

공장과 기숙사 심방을 마친 윤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남동공단 근처 원룸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부 근로자들은 기숙사 대신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원룸을 택했다. 윤 선교사가 찾아간 곳은 낫(25세)과 매(24세) 부부의 거처. 두 사람은 윤 선교사의 든든한 동역자들로, 이날의 화제는 매가 얼마 전 시작한 인터넷 주문배달 일과 낫이 인도하는 주일 성경공부 이야기였다. 웃음 섞인 태국어가 한참 오갔을 무렵, 위층에 사는 또 다른 태국인 부부가 일을 마치고 방금 세수를 한 얼굴로 들어섰다. 이날도 윤 선교사의 심방은 어지간히 늦어질 기세였다.

윤윤경 : 교인들이 지금처럼 행복하면 좋겠어요. 교회 처소도 주시면 좋겠고, 교회도 부흥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 새해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에 보내고 싶어요. 고향에 있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쎅싼 : 일하기 전에 매일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고 있어요. 새해에는 믿음이 더 깊어지고, 더 많은 태국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좋겠어요.

파커폭 : 사장님이 장로님인데, 지금 공장이 많이 어려워요. 새해에는 일감도 많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하면 좋겠어요.

: 허리를 다쳐 쉬고 있는데 마냥 쉴 수만은 없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인터넷 주문배달 일이 새해에는 더욱 잘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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