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명예교수(서울대)

▲ 손봉호 명예교수(서울대)

1980년대 교육개발원장을 지낸 고(故) 신세호 박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교회에 가지 않지만 자녀들은 교회에 보낸다고 했다. 교회에 가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 했다. 신 박사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그와 같이 말할 수 있겠는가?

2017년도 다사다난했지만 2018년은 더더욱 그럴 것 같다. 한국 기독교는 성직자 과세, 성 소수자 권리, 세습, 교인 감소 등 기독교 자체에 대두되는 문제들도 해결해야 하겠지만 한국의 최대 종교로서 북핵, 개헌, 적폐청산, 일자리, 고령화·저출산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어느 정도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정직하게 말하자면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 머리털이 잘려진 삼손처럼, 덩치는 큰데 힘은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의 힘은 신자의 머릿수나 재산의 많음에 있지 않다. 돈, 권력, 명예 같은 세속적 힘을 상대화하고 초월하는 영적인 힘, 도덕적인 힘이 바로 고등 종교, 특히 기독교가 행사할 수 있고 행사해야 하는 힘이다. 사회의 존경과 인정을 받을 때 교회는 참다운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세상은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영적인 힘 대신 세속적 힘의 행사를 시도하면 종교 자체가 망가지고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된다.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권위 대신 교인 수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정부를 위협하여 교계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면 당장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나 조만간 부메랑이 되고 만다. 그런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날 수 없으며, 신세호 박사가 기대했던 인간교육은 이뤄질 수 없다. 세상은 종교로부터 돈, 권력, 정치적인 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제공할 수 없는 고상한 정신적인 힘, 도덕적 감화를 기대한다.

과거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약했을 때는 고상한 정신적인 힘과 도덕적 감화력이 있었다. 그러나 교인 수와 돈 등 세속적인 힘이 늘어나자 십자가는 뒤로 사라지고 세속적인 힘이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무능해졌다. 교회 세습이 빈번하고, 교단 고위직을 위해서 뇌물수수가 일어나도 속수무책이다. 자체정화의 기능이 이렇게 마비되었는데 무슨 힘으로 사회 문제해결에 공헌할 수 있겠는가?  

“늦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빠른 때”란 말이 있다.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는 말이다. 다윗처럼 큰 죄를 범한 사람도 철저히 회개하니 용서받았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교리다.

회개는 물론 열매가 있어야 참되다. 행동으로, 삶으로, 성화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맺어야 할 회개의 열매는 도덕적 권위의 회복이고 그 필수적인 조건은 돈을 멀리하고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탐심은 우상숭배”(골 3:5)라 했는데, 그 탐심은 바로 물질적인 것을 탐하는 마음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말씀하시면서 재물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셨다.

오늘의 인류, 특히 한국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돈에 미쳐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재용 씨보다는 장기려 박사를 더 존경하고 교회가 삼성그룹처럼 되는 것을 싫어한다.

2018년에 한국교회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돈을 무시하기 시작함으로 도덕적 권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부모들은 모두 자신들의 자녀들을 교회에 보내려고 애쓰도록 해야 한다. 2018년 새해, 한국교회도 교인도 조금씩 가난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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