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은 맑고 깨끗함을 나타내는 말로 정도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꿈꾸는, 희망이 넘치고 공의와 정의가 가득한 이상사회에 꼭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청렴인 것이다.

세계는 선진 사회를 평가하는 4대 요소를 경제력과 정치민주화와 도덕성과 신뢰성이라 고 이야기한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는 투명성 부분인 도덕성과 신뢰성 부분에서 미흡한 평가를 받고 있다.

OECD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정부패지수 순위를 보면 한국은 거의 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개혁하기 위하여 생긴 법이 소위 김영란법 아닌가.

이렇게 세상 나라도 개혁을 위하여 몸부림치는데 이 사회를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인도하여야 할 총회는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부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부패의 단적인 모습이 문제 있는 교회와 노회에 관여하는 정치권의 모습이다.

일단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노회가 주관하지만 노회 정치력으로 안되면 총회로 이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분규측 대표들은 정치권에 손이 닿는 대로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그 첫 번째 방법이 총회의 명망 있는 인사들을 모셔다 설교를 시키고 분에 넘치는 사례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소한 총회 지도급 인사라면 분규 교회와 노회사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잘못된 측에 발을 담가서는 안 되는데, 이런 생각 없이 그냥 가서 설교를 하고 대접을 받는 것이 오늘의 총회 상황이다.

결국 분규에 빠진 교회나 노회는 정치권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작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이야기처럼 상어 떼에게 다 뜯긴 앙상한 고기의 모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정치권은 언제고 바른 신앙과 양심으로 불의를 버리고 청렴을 지향해야 한다. 조선조 500년 동안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청백리들의 선공후사와 청빈과 결백을 실천할 굳센 의지와 백성에 대한 사랑을 본받아 그윽한 향취를 남기는 목사와 장로들이 되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정신이 조선 청백리들의 정신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자. 청렴을 잃어버린 총회 정치권의 인사들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에 손을 얼마나 대었는가를 생각하고 불의한 재물에 무너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 지금도 분규의 교회와 노회 언저리에서 불의한 재물을 받으며 수많은 성도들을 낙심과 좌절로 이끄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라 최소한 목사와 장로의 품위를 지키는 양심의 지도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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