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인파이터 고현영은 ‘도전의 링’이 즐겁다
[성탄특집] 인파이터 고현영은 ‘도전의 링’이 즐겁다
  • 송상원 기자
  • 승인 2017.12.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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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선수서 국가대표로 성장한 스물 셋 복서 …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 향해 오늘도 구슬땀
부모님과 홍은돌산교회 전폭적 지지는 큰 힘 … “시합때마다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더욱 다가갈 터”

▲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고현영 선수(왼쪽 첫번째)와 익스트림휘트니스복싱클럽 정주열 관장(가운데), 우승완 감독.

여자복싱에서 남북대결이 벌어졌다.

지난달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아시아복싱선수권대회 페더급 16강전. 북한 김송미와 일전을 앞둔 고현영 선수(익스트림휘트니스복싱클럽)는 언제나처럼 잔뜩 긴장한 상태로 링에 올랐다. 더구나 첫 국제대회 첫 시합 상대가 북한선수라니, 떨림은 커져갔다.

공이 울리고 곧바로 “철썩”. 상대의 펀치가 얼굴을 강타했다. 리치가 긴 북한선수는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갔다. 긴장한 나머지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한 채 1라운드를 마무리한 고현영 선수. 허나 이대로 물러설 그녀가 아니다.

2라운드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작전은 달리 없다. 들어가고 또 들어가는 고현영 선수 특유의 접근전이 경기 양상을 뒤바꿔놓았다. 코너에 몰린 북한선수 안면에 연거푸 적중하는 라이트훅. 쉴 새 없이 파고드는 고현영 선수의 스텝과 펀치에 상대의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경기 막판까지 사각의 링에서 난타전이 계속됐다. 3라운드 내내 공방을 거듭한 양 선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땀이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결국 판정으로 간 승부. 청코너 선수의 손이 올라갔다. 3-2, 고현영 선수의 판정승. 남북대결의 승전보이자, 고현영 선수의 국제대회 첫 승리였다.

“복싱, 정말 좋아합니다!”

불과 3년 전만해도 복싱의 복자도 몰랐다. 어려서부터 축구에 소질이 있어 스카우트 제의도 왔지만, 선수생활로 이어지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됐을 때 현영 씨의 관심사는 연극이었다. 대학로 극단에 들어가 무대에도 서봤지만, 전문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신이 갈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곁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이제 제가 다가가려 합니다.

“사실 제가 무대체질은 아닙니다. 연극무대에 오를 때마다 얼마나 떨었는데요. 요즘도 링에 오를 때면 긴장을 심하게 해 헛구역질하기도 해요. 그래도 좋아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해보는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 덕에 복싱선수가 된 것 같아요.”

복싱을 접하게 된 사연이 재밌다. 모든 젊은 여성의 고민, 다이어트가 현영 씨를 복싱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종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영 씨가 인근 익스트림피트니스복싱클럽의 문을 두드린 것은 3년 전. 처음 1년간은 여느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싱을 했다. 그러다 일반인 대상의 생활체육복싱대회에 참가하면서 복싱의 재미를 느꼈다. 그 즈음 현영 씨의 재능을 눈여겨 본 익스트림피트니스복싱클럽 정주열 관장과 우승완 감독이 전문 복싱선수로 뛸 것으로 권유했다.

일단 좋으면 뭐든지 해보는 성격답게 덜컥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선수로 뛴 첫 경기에서 보기 좋게 패했다. 많이 맞기도 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첫 경기에서 졌는데 불구하고 또 한 번 도전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점점 복싱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3라운드를 치르고 저의 손이 올라갈 때의 쾌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복싱을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웃음)

체육관 선수에서 국가대표로

복싱계는 고현영을 주목한다. 무엇보다 이례적인 이력 때문이다. 현 국가대표들 면면을 보면 다들 실업팀이나 체육대학 소속인데, 현영 씨는 이른바 개인 체육관 소속 선수다.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다. 하물며 3라운드 내내 부딪히고 싸워야 하는 복싱에서 일반인이 단기간에 정상 레벨에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영 씨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거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루 일과가 빠듯하다. 새벽 런닝훈련으로 시작해서, 오전에는 체력훈련에 집중한다. 이어 저녁까지 기술훈련과 스파링의 연속이다. 2년간 빠짐없이 해왔다. 하지만 실업선수들은 모두 이 정도 훈련을 해낸다. 게다가 현영 씨는 자신보다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선수로 뛴 이들과 경쟁한다. 그럼에도 국가대표로 성장한 비결이 무엇일까.

우승완 감독은 “현영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두 개 세 개를 습득하는 능력이 있다. 그만큼 부단히 노력하는 선수다. 여기에 남다른 체력이 강점이다.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인파이터임에도 3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1라운드 초반과 같은 체력을 유지한다.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체력이 고현영 복싱의 기반이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3라운드 내내 몰아치는 인파이터. 상대하는 선수들은 끊임없는 공격에 질린 나머지 혀를 내두르기 일쑤다.

타고난 체력에 노력이 더해진 셈이다. 하지만 복싱선수 고현영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성장 중인 선수라는 것이다. 개인 체육관 소속 선수가 여자복싱 국가대표가 된 것은 현영 씨가 처음이다. 그것도 선수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2년 만에 일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미완의 인파이터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현재로써는 가늠하기 어렵다. 현영 씨는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정주열 관장과 우승완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끄집어내고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한데, 제게는 정말 좋은 스승님들이 있습니다. 즐겁게 훈련할 수 있게 지도해주고,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아껴주는 정주열 관장님과 우승완 감독님을 만나 기대를 받는 선수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신앙 이야기를 시작하니 조금 쑥스러워했다. 모태신앙이라지만, 겸손해하며 자신의 신앙 크기를 말하길 주저했다. 그래서 먼저 신앙멘토 부모님 얘기를 했다.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후 부모님의 기도만큼 힘이 되는 게 없다는 것이 그녀의 얘기였다.

“처음 복싱선수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엄청나게 지원을 해주십니다. 특히 항상 딸 걱정을 하며 기도해주는 아빠 엄마, 그 기도 덕분에 고된 훈련 가운데에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 아빠에게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 홍은돌산교회(우세현 목사) 식구들 이야기로 이어졌다. 홍은돌산교회의 떠오르는 스타 현영 씨를 향한 교인들의 성원은 가히 폭발적이다. 문자와 카톡 응원은 기본. 교인들이 기도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담임 우세현 목사는 비밀리에(?) 경기장을 찾는 열성팬이기도 하다.

“제가 무뚝뚝하고 티를 잘 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게다가 경기 전 긴장을 심하게 해 보러 오셔도 잘 챙겨드리지 못해요. 그래도 다 알고 있습니다. 몰래 오셔서 응원해주는 담임목사님, 항상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는 교회 식구들이 있다는 것을요.”(웃음)

선수생활을 하면서 신앙심이 더 커져가는 것 같다고 했다. 훈련과 감량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국제대회를 통해 타국의 환경을 보며, 또한 시합을 마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이제 현영 씨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제게 계속 신호를 보내는 데 제가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곁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이제 제가 다가가려 합니다.”

올림픽 메달 향해 달린다

현영 씨의 시계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져 있다. 앞으로 2년 반, 올림픽 메달 도전을 위한 강행군이 이어질 예정이다.

희소식도 들린다. 그동안 올림픽 여자복싱은 -51kg -60kg -75kg 세 체급에만 메달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57kg체급이 신설된다는 소식이다. 어쩔 수 없이 자기 체중 이상의 -60kg체급에서 활동했던 현영 씨가 -57kg체급에서 제 기량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또한 최근 현영 씨는 실업팀 입단을 타진하고 있다. 정들었던 익스트림피트니스복싱클럽을 떠나는 것은 아쉽지만,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청신호다.

물론 기쁜 소식만 있는 게 아니다. 도쿄올림픽부터 프로선수의 참가도 허용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준비를 잘하면 두려울 게 없다는 것이 다부진 청년 복서의 생각이다.
“복싱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어떤 상대를 만나든 제가 노력하고 준비한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제가 자격을 갖춘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올림픽에서 저를 비롯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해, 제가 좋아하는 복싱을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복싱은 1988년 서울올림픽 김광선 박시현 선수 이후 금맥을 못 캐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복싱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했다. 과거 인기종목이자 효자종목이던 대한민국 복싱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2020년 도쿄올림픽을 기대해 보자. 아직 만개한지 않은 인파이터 고현영, 그녀가 사각의 링에서 써내려갈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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