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한뼘소설]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인가?”
 

눈물만 흘리는 김 교수 “하나님, 저 참 불쌍한 인간이군요”

“55세 김석준 의사는 황금수저다.”라는 소문처럼, 그는 모든 면에서 최고다. 평범한 집안의 형제 많은 집의 맏아들로 오직 실력 하나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했다. 정계에서는 판이 바뀔 때마다 잘 생기고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김 교수를 가만 두지 않는다. 그런데 금상첨화 격으로 미인인 아내는 유명 화가이며, 유학 중인 아들과 딸 역시, 천지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앞날이 맑다.
하지만 그에게는 축복받은 게 하나 더 있다. 교회 장로다. 사람들은 말한다. “신앙까지 있다고? 그럼 이생에서 복 터지게 잘 살다가 죽어서는 천국 가는 복의 복을 누린다고? 말도 안 돼! 하나님이 너무 한 사람만 몰아주는 의도가 뭐야?” 그러나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한다. 그의 겸손함,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더 유명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자타공인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천사가 김석준의 파일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지? 요즘 들여다보지 않은 사이에… 와! 내가 완전히 속을 뻔 했네.”
천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동안 점검하지 않은 그의 최근 기록을 살폈다. 김 교수가 자원봉사 나간 요양원에서 노인들에게 트로트에 맞춰 율동을 하는 영상이 떠올랐다. 모두들 감탄한다.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위해, 다윗처럼 춤을 추다니!’
그러나 사실 그는 고전음악 외에는 듣지 않는다. 세상 음악이나 자신의 귀에 수준 낮게 들려오는 찬송가는 모두 천박하기 그지없는 쓰레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는 부자들만 설치할 수 있다는 최고의 음향시설이 되어 있다. 그는 그 기계를 통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고귀함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두 번째 장면은 그가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이었다. 영재교육, 조기유학, 고액과외 등등에 대한 주제로 이어가는데, 김 교수는 ‘공부 따위는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에 있고, 그 영혼의 아름다움은 그 영혼이 무엇을 갈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했다. 하지만 그는 “무지하고 무식하며, 어리석고 아둔하며, 학식이 짧고 학벌이 허름한 것은 죄악 중의 죄악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지성에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사회와 교회는 무너지고 있다…”라고 믿는다.
천사는 점점 한숨을 짙게 내뿜으며 세 번째 장면을 보았다.
그는 노숙인들을 위한 밥차에서 식사도우미를 하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매서운 겨울.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밥차 앞에는 노숙인뿐 아니라 걸인, 노인, 장애인들이 줄을 섰다. 이런 자리에 김 교수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걱과 국자를 휘두르며 사랑을 담아주자, 일반 방송은 물론 기독교관련 방송까지 몰려와 취재하기 바빴다.
“예수님도 집이 없었고, 자주 굶으셨으며, 가난하셨지요.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그는 쟁반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축복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밥을 퍼주고, 국을 담아줄 때마다 경멸의 중얼거림을 덤으로 담았다. ‘평생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는 공공의 적이지! 사실, 진실로 타인을 위해 살 수 있는 능력자들만 살게 해야 하는데…. 이 짓거리는 낭비일 뿐이야! 만날 밥 준다고 달라지나? 어차피 당신들은 사회에서 아무런 권리행사도 안 하고 할 수도 없으니 나와는 평생 만날 이유가 없는 인간들인데….’
천사는 화가 났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는 어떨지 안 봐도 훤하네. 정신 차리라고 혼을 내줄까?”
천사는 작년에 천국으로 온 그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남편과 사별한 뒤, 그녀에게 남은 건 가난과 어린 다섯 남매였다. 자살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뒤늦게 신앙을 가진 그녀는 기도로 가난을 물리치고, 기도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녀가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하나님만! 하나님만! 하나님만 있으면 되는 거 알지?’였다.
천사는 김 교수의 어머니에게 갔다. 어머니는 천사들에게 땅에서 살 때에 힘들었지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에 대해 전해주고 있었다.
천사:성도님.
김 교수 어머니: 무슨 말씀이든 하세요. 천국에서는 어느 것도 놀라거나 가슴 아픈 일이 없다는 걸 아니까요.
천사: 아드님의 영혼을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고 합니다.
어머니:(활짝 웃으며) 나도 하나님처럼 말하렵니다. 그 아이 목숨만 빼고는 마음대로 하세요. 왜냐고요? 저는 그 애가 나처럼 천국에 올 걸 믿거든요.
천사: 알겠습니다. 나중에 결론만 알려드리지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천사는 김 교수에게 세미나 겸 겨울 스키여행 일정을 내려주었다. 원래 김 교수는 유럽 여행을 하려 했는데 천사가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김 교수는 툴툴 거리며 집을 나섰다. 아내는 일본 전시회로 어제 출국했고, 두 아이는 미국에서 성탄절 휴가를 즐기느라 전화조차 잘 받지 못하던 터였다.
‘아쉽다. 지금쯤 몽블랑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을텐데…. 왜 원장님은 갑자기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게다가 스위스 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에 이런 비상사태가 생기다니!’
온갖 불평을 하매 얼마나 갔을까.
“뭐야? 눈이네! 에이, 도착한 다음에나 올 것이지…. 여하튼 우리나라 기상대는 폭파를 시켜야지! 미국이나 유럽같은 데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만날 일어나니….”
김 교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이 온다는 소식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눈길을 잘 뚫고 춘천으로 들어섰다. 눈발은 더 거세졌다. 고속도로는 이미 눈밭 주차장이 되어 새벽에나 도착할 듯했다.
“안되겠다.”
김 교수는 조금도 주저함없이 국도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국도 역시 만만찮았다. 회의나 여행 등으로 속초를 셀 수 없이 많이 와 본 김 교수는 아예 길안내 버튼을 꺼버리고 자기만 아는 길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하늘이 왜 이래? 5시도 안 됐는데…. 아예 한밤중이네….”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주 잠깐 창밖을 올려다보는 순간! 김 교수는 자신의 차가 허공을 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두 눈을 감았다.
“으으으으…….”
온몸을 1밀리미터의 간격도 두지 않고 야구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아팠다.
“조금만 참아요. 눈 때문에 길이 끊겨서 119가 금방 못 온대요.”
“다섯 시간이나 자다니…. 그래도 겉으로는 멀쩡한 걸 보니 괜찮은가 보네요. 죽이라도 줘야겠네요. 아니, 전생에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논바닥에 굴렀는데 멀쩡할까?”
김 교수는 생각했다,
‘강한 강원도 억양. 분명 시골 노인 부부 목소리야. 아, 저런 무지한 사람들이 뭘 알까? 그래, 후배들을 부르자, 핸드폰, 내 핸드폰!’
김 교수는 눈을 뜨고 팔을 휘휘 저으며 핸드폰을 애타게 찾았다.
“핸드폰? 우리가 몇 시간을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아마 눈 속에 쳐 박힌 것 같은데 눈이나 다 녹아야 찾겠지요. 우선 몸이나 신경 써요.”
“그럼 할아버지 거라도 빌려주세요.”
“우리 건 효도폰인데 괜찮을려나….”
김 교수는 노인의 전화기를 통해 한참만에야 후배 의사와 통화를 했다.
“뭐? 세미나가 취소됐다고? 그럼 너희 지금 어딨어? 집이라고? 왜 나한테 안 알렸어? 재전화가 꺼져 있어? 알았어. 나 지금 사고 났으니까 빨리 와라.”
김 교수가 주소를 알려주고 5분도 안 되어, 후배 전화가 왔다.
“뭐? 도로통제? 야! 헬기를 타고라도 와야지!”
수 곳에 전화를 했으나 길이 막혀서 올 수 없다는 대답만 나왔다. 아내를 생각했지만 결코 가족에게 자신의 나약한 점을 모이기 싫어하는 기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알린다해도 아내 역시 자기의 일을 무슨 일로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는 성격이잖은가.
김 교수는 노인 부부가 끓여준 죽도 거절하고 눈을 감은 채 쾌쾌한 내음 나는 이부자리와 메주를 뜨는 온돌방을 탈출할 생각만 했다. 그러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포기한 채 눈을 감았다.
그때, 노부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할멈, 내일 교회 청소라는데 갈 거요? 참, 그런데 저 양반은 예수님을 믿나, 안 믿나?”
“딱 보니까 안 믿는 것 같아요. 정신 차리고 나서 감사기도 하는 걸 못 봤잖아요. 그리고 계속 화만 내고.”
“맞다, 맞아. 그리고 성격이 좀 그런 것 같아. 전화하면서 줄창 화만 내잖아.”
“그리고… 이혼당한 것 같아요. 이런 사고에 가족도 안 찾고, 아마 성격이 안 좋아서 이혼했는지도 몰라요.”
“불쌍한 사람이군. 더구나 가정교육도 못 받고, 가난해 보이더라고.”
“왜요?”
“우리한테 단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안 하잖아요. 그리고 정신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내 차 내 차하면서 차만 찾는 걸 보니 할부로 차를 산 지 얼마 안 되나봐요.”
“에구, 정말 불쌍한 사람이네. 그런데 왜 예수님을 안 믿나?”
“우리도 잡시다. 내일은 119가 올지 몰라요. 그럼 얼마라도 저 사람 좀 챙겨줘요. 얼마나 불쌍해요….”
“알겠어요. 올 추석 때 큰 애가 준 용돈 있으니 좀 떼어주고, 우리가 기도해줍시다.”
노 부부는 벽을 보고 누운 김 교수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왔다. 김 교수는 정말 재수없는 하루라고 생각하며 숨소리조차 죽였다.
노부부는 김 교수가 그리도 싫어하는 -박자도 음정도 맞지 않는- 찬송가를 세 곡이나 부르고나서, 할머니가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가 마음대로 판단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사오나 정말 불쌍한 사람이니 불쌍히 여겨주시어 보살펴주옵소서. 내일 아침이면 우리집 소처럼 벌떡 일어나게 하시고, 논바닥에 쳐박힌 차 할부금도 다 갚게 해주시고, 가족들도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 만나는 걸 제일로 먼저 하게 해주세요….”
노부부의 기도는 그칠 줄 몰랐다.
눈도 쉼 없이 내리며 지붕을 덮고 덮었다. 외양간의 소와 개들도 기도소리를 듣는 듯 조용했다. 모두가 평온하게 점점 깊은 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 교수만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악 다물었다. ‘하나님, 저, 참 불쌍한 인간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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