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특별설교] 눈크 디밋띠스(Nunc Dimittis) (눅 2:22~33)

시므온이 보았던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눈이 열려 … 영광스런 복음의 사명, 호흡있는 날까지 외쳐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9~32)
 

▲ 류응렬 목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전 총신대학원 설교학 교수)

하얀 머리에 마른 팔로 아기를 안고 있는 노인이 있습니다. 평온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노인의 이름은 시므온이고 아기는 예수입니다. 시므온은 하늘을 향해 찬송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9절). ‘이제 놓아 주시는도다’라는 말은 라틴어로 눈크 디밋띠스(Nunc Dimittis)라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많은 신앙인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 ‘주여 이제 종을 놓아 주시는도다’(Domine, Nunc Dimittis)라고 고백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곤 했습니다.

시므온이 완수한 사명이 무엇이었기에 이제 죽어도 좋다고 고백합니까? 성경은 시므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5절). 시므온은 성령이 함께 하셨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를 표현하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말은 다가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의 인생은 한 마디로 기다림, 메시아를 기다리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담 이후 죄악으로 심판 받을 모든 인류를 구원할 그 메시아, 흑암에 사는 백성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실 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기한이 없는 기다림이란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기다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다리는가에 있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린 것은 이스라엘의 위로, 다가오실 메시아였습니다. 그분을 향한 유일한 소망 하나로 시므온은 매일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무성했던 머리가 빠지고 백발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그는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가 성전에 들어갈 때였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7절). 시므온은 한 눈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그때 나온 위대한 고백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9절). 주여, 이제 종을 놓아 주시는도다. Domine, Nunc Dimittis!

예수님을 만난 것은 일생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것이 사명의 마지막 종점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았을 때 하늘을 향해 위대한 고백을 올립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31~32절). 이 한 마디를 위해 시므온은 오늘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이 한마디로 그의 사명을 완성했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렸던 예수님, 그가 외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시므온이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제 40일이 된 아기를 안고 외친 고백은 구원자 예수였습니다. 예수님 탄생의 진정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죄를 용서하러 오신 구원자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 연구 발표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33%, 산타클로스와 선물 22%, 크리스마스 파티 21%. 네번째 17%를 차지한 것이 예수였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즐기는 축제 18%, 소외된 이웃을 돕고 섬기는 날 24%. 가장 많은 응답은 가족과 연인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갖는 날이 50%였습니다. 8%의 사람만이 예수님의 생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상업주의와 쾌락주의에 밀려서 본질이 사라지는 성탄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외된 이웃을 잘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즐거운 성탄캐럴을 부르는 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 정말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들을 향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이 주님을 만났다면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시므온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 아브라함도 다윗도 멀리서 보고 기대했던 그 메시아 예수! 목자들이 전한 바로 그 소식,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주 예수님의 이름을 외쳐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경배한 그 이름, 우리의 메시아 예수님을 외쳐야 합니다. 이때 우리도 동일하게 시므온처럼 고백할 것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종을 놓아 주시는도다. 이제 제 사명을 마쳤습니다. Domine, Nunc Dimittis!

둘째, 세상의 빛 예수님입니다. 시므온이 두번째 전한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32절).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구원자가 아니셨습니다. 온 세상 만민들을 위해 오신 구세주, 열방의 빛 되신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유대 성전에 머물렀지만 시므온이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자 뿐 아니라 열방을 구원하는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셨고 흑암의 땅에 하늘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죽음의 세상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이방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나와 가족에 고정된 시선에서 이웃과 세계 열방으로 관심이 확장됩니다. 우리 교회라는 울타리는 넘어 고통의 땅 아프리카와 영적으로 죽어가는 유럽의 영혼들을 향한 눈물이 일어납니다.

결혼 10주년을 맞이할 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중남미에 있는 세인트 토마스(St. Thomas)와 세인트 존(St. John)이라는 섬입니다. 저에게 세계 선교의 비전을 심어준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라비안 교회는 평범한 하나의 교회였습니다. 진젠돌프라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변화를 받았을 때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위대한 세계선교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1727년 8월 13일 부흥회 때 성령이 임했고 온 교인이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열방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관심에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세계 선교에 대한 열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첫 선교사를 파송한 곳이 세인트 토마스였습니다. 이 섬은 당시에는 덴마크가 점령한 식민지였고 아프리카 가나에서 노예들을 끌고가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했습니다. 이들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목사가 된 진젠돌프 백작은 그곳에 흑인 노예들에게 전도할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26명이 사람이 지원했고, 두 사람을 먼저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데이빗 니츠만과 레오날드 도버였습니다.

노예들이 있는 곳에 자유인의 입국이 허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덴마크 여왕에게 자신들이 노예가 될 것을 요청했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세인트 토마스에 크리스마스 두 주 전 1732년 12월 13일 도착했습니다.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던 백인 영주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낮에는 노예들과 함께 일을 하고 밤에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한 주 동안 그 모라비안 교회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세인트 존 곳곳을 뒤지다가 육지 깊숙한 곳에서 한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거의 허물어진 교회 예배당이 눈에 들어왔고 예배당 입구에 걸린 푯말을 보았습니다. 1741년에 세운 모라비안 베다니 교회였습니다. 모라비안이 이 섬에 들어온지 9년 후에 세운 교회였습니다. 돌아오기 전날에 가장 오래된 교회가 있다는 곳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감격적인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뉴헤른후트 모라비안 교회 (New Herrnhut Moravian Church). 1732년에 두 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세운 교회였습니다. 독일에서 그들을 파송한 교회가 ‘하나님의 지키심’이라는 헤른후트(Herrnhut)였고 이곳은 뉴헤른후트(New Herrnhut) 교회였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분의 흑인 여성도가 예배당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280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변함없이 서 있는 예배당 강대상 옆에는 모라비안의 정신을 담은 표어가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Our vision is to touch our community with the Word of God, motivated by a love for God, and compassion for His people.)

마침 교회 옆 기도실에는 금요일 오전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세 분의 흑인 성도가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그들과 함께 감격적인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들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주님입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그들의 다음 대답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삽니다. 그들이 간직한 복음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한 모라비안 선교사들의 그 십자가 복음, 성경이 말씀하는 바로 그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눈으로 본 사람, 나를 위해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본 사람들의 삶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무엇을 위해 삶을 바쳐야 할 것인지 방향이 보입니다. 생명을 바친다 해도 조금도 희생이 아니라 영광스런 특권이 되는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일생을 기다린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말씀대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시므온이 만난 예수, 그 예수님을 여러분은 만나셨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낮고 천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구원자를 보았습니까? 사망의 어두움에 빠져 심판과 죽음으로 끝이 났을 이방인 되었던 나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우리가 만난 예수님, 시므온이 보았던 예수님, 그 옛날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만났던 그 동일한 그 예수님을 보셨다면 우리는 외쳐야 할 복음이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알리는 그 사명을 다하는 날, 우리는 주님 앞에 고백할 것입니다. 주님, 이제는 당신의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Domine, Nunc Dimit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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