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들이 다함께 마당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김장을 담그는 모습, 좀처럼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하지만 김제시 검산동 주공아파트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연례행사이다.

김제노회(노회장:김창수 목사)가 운영하는 김제사회복지관(관장:김준수)에서는 지역교회들의 후원을 받아 해마다 김장잔치를 연다.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 사는 검산주공아파트 주민들의 겨울나기를 돕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김장잔치의 방식이 독특하다. 혜택을 보는 주민들이 직접 김치 담그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른데서나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검산동 주공아파트 주민들도 다른 봉사자들이 애써 절이고 버무린 김치들을 배달받아 사용했다.

하지만 수혜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공동체 의식도 불어넣어보자는 취지로 복지관에서는 몇 해 전부터 주민들이 직접 김장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각자 손발 맞추는 데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함께 일하는 동안 오랜만에 서로 안부도 묻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도 피웠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구경만 하던 주민들도 차츰 하나 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자기 밭에서 생강을 캐와 양념에 쓰라고 보태는 이들도 생겼고, 배추를 심으라고 땅을 내놓는 후원자도 나타났다.

이런 따뜻한 분위기 가운데 11월 30일에 실시된 올해의 김장잔치에는 무려 60세대 주민들이 동참했다. 이들은 추위며 피로와 싸워가며 이웃들 몫까지 총 200세대에게 배분할 김치를 담그는데 성공했다.

갓 담근 김치에다 푹 삶은 수육을 곁들여 나누어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74세의 노구를 끌고 이번 김장잔치에 동참한 한 할머니는 “내가 담근 김치를 이웃들과 나누고,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물도 할 수 있어서 마음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준수 관장은 “이웃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인정이 사라지는 시대를 걱정하며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김장잔치를 생각하게 됐다”면서 “올해 행사도 주민들 서로 간에 훈훈한 정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정재영 기자 jyjung@kidok.com

사진설명>>김제 검산주공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김장잔치를 하며 월동에 사용할 김치를 담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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