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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청교도들 이야기
  • 이종찬 목사(주필)
  • 승인 2017.12.04 14:29
  • 호수 2131

청교도들은 1620년 11월 9일 메사추세츠의 케이프카드에 도착해 자신들의 공동체를 세워 나갔다. 저들은 메사추세츠 메인 뉴햄프셔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등 6개 주에서 청교도 공동체를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뉴잉글랜드주라고 불렀다. 뉴일글랜드 청교도들은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공동체를 설립한다. 메사추세츠 청교도들을 마녀 사냥 사건으로 매도하지만 이 사건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회성 사건이기에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청교도주의의 부정적 측면인 폐쇄성은 점차 극복되어졌고 긍정적 측면으로 도덕적 생활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당시의 청교도 공동체처럼 범죄가 적고 개화된 곳은 세계사에서도 극히 드물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검소함과 청빈은 언제나 미국사회에서 재현되어야 할 모범이었다. 청교도들은 많은 면에서 칼빈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이들은 제네바 장로회를 모델로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에서 마을회의를 관례화시켰다. 민주주의의 장착이었다. 이는 각 주들로 확산되어 미국의 정치제도의 근간이 된다.

영국 국왕에 맞서 독립을 주도한 이들도 뉴잉글랜드 시민들이었다. 또한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제일 먼저 청산한 곳도 메사추세츠와 인근 뉴잉글랜드 주들이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반세기 전에 이미 메사추세츠는 노예제도가 불법일 만큼 저들은 개화되어 있었다. 또한 도망 노예들을 가장 많이 도운 자들도 이 곳 주민들이었고 남북전쟁 당시 가장 많이 피를 흘렸던 자들도 뉴잉글랜드 주민들이었다. 청교도들은 교육의 나라를 만들었다. 주민 50명 당 교사 1인 채용을 의무화하였고 타운마다 초등학교를 세웠다. 존 하버드 목사는 폐병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400권의 책과 777파운드를 대학에 기증했고 이 대학은 그의 이름을 따서 신학을 첫 전공으로 시작하였다. ‘베리타스 크리스토 에트 에클레시아이(Veritas Christo et Ecclesiae)’,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한 기관’이 대학의 모토였다.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계약사상을 깊게 신봉한다. 그 내용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들이라는 것이었다. 이 계약사상은 미대륙을 신적소명을 가진 땅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계약사상은 미국의 확장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이념이었다.

이종찬 목사(주필)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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