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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청년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춰라김명진 목사(빛과진리교회)
김명진 목사(빛과진리교회)

신학대학원 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한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십 수 년간 왕성한 사역을 하고 있던 그가 보자마자 꺼낸 이야기는 자신도 차세대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그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교회에서 청년들이 점점 떠나가고 있다. 예배를 드릴 때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교회에서 장년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청년 교인들이 없다면 다음 세대에 교회를 책임질 사람들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친구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했다.

“청년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좋아해라!” 자세히 말해보라는 친구에게 “노란 머리로 염색한 청년에게 멋있다고 말해주라”고 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하기에 한 술 더 떠서 “귀걸이를 한 남자 청년도 멋있다고 말해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건 안 되겠다. 못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필자는 대여섯 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학가에서 시작한 교회가 지금 25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하게 된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개척을 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반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청년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면, 앞서 얘기한 ‘청년들의 모든 것을 좋아하자’와 ‘버릇이 없으니까 청춘이지’이다. 청년들의 반항기가 오히려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개척 초기부터 필자는 청년들을 얻기 위해 민소매티를 입고 대학교 코트에 나가 함께 농구를 했다. 개척하고 5년이 지난 후에는 교회 내에 청년들의 트렌드인 힙합팀을 만들었다. 랩팀이 무대에 나와서 랩을 할 때면 대부분의 청년들이 마음을 연다.

혹자는 그러면 교회가 세상에 물드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한다. 부흥을 하려고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하기도 한다. 외람되지만 필자의 교회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을 삶으로 가져가기 위해 치열하게 힘쓴다.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고, 평일 새벽 6시에는 교인들의 80%가 팀별로 모여 매일 경건의 시간을 함께 한다.

또한 성경공부를 참석한지 2년 이상이 되는 교인들의 90% 이상이 300개 이상의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있으며, 매주 캠퍼스나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전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전도되어서 온 500여 명의 사람들이 하반기부터 새롭게 시작한 초신자 성경공부반에 참석하며 매주 복음의 기초를 탄탄히 다져가고 있다.

필자의 교회가 토요일마다 5시간씩 성경공부를 한다고 말하면 주변에선 깜짝 놀라지만 청년 시기는 그 시간을 충분히 소화해 낼 만큼, 그리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시절이다.

지난 11월, 총회 교육부에서 실시한 세미나에서 어떤 사모님이 필자에게 질문을 했다. 그 교회는 청년부가 서너 명 정도 되었는데, 청년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난 뒤 곧바로 호프집에 가서 자정 넘어서까지 맥주를 마시며 교제한다고 했다. 목회자의 자녀도 함께 가는데 최근 그 수가 10여 명 정도로 늘었다며, 그렇게 해서라도 청년들이 늘어난 것을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자라난 청년들이 주축이 된 미래의 교회 모습을 생각해보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귀하다 하여 청년 과보호 정책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약하게 키우거나 청년들만 따로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은 도리어 그들을 죽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청년들을 돕다 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일단 복음을 깊이 받아들인 청년은 세상과 어울리며 그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친다.

또한 청년들은 육신의 정욕에 노출된 교회의 모습에 저항한다. 자기들도 정욕에 약하면서도 그들은 교회가 거룩하길 바란다. 청년사역에 있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청년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미명 아래 육신의 정욕이 무방비 상태로 교회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계기가 된다.

청년들은 안목의 정욕에 오염된 교회 분위기에 저항한다. 안목의 정욕이라는 것은 교회가 황금 만능주의화 된 것을 말한다. 투명한 재정 관리를 통해 깨끗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부자나 가난한 자들을 교회에서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청년들은 이생의 자랑에 물든 교회를 저항한다. 이생의 자랑이라는 것은 학벌이나 살림살이 등등, 세상의 스펙이 교회에서 만연된 것을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교회 일꾼들을 선발할 때, 오직 성경의 잣대로 선발해야 한다.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을 교회의 주축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교회 지도자들의 헌신과 민감한 사역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청년들이 하나님 말씀을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손발로 가져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하며 삶에서 성경적인 본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성경의 원리들을 따라서 강하게 청년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우리 미래의 소망은 청년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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