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에 두세 번쯤 기자에게 연락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오지나 다름없는 작은 농촌교회의 허름한 예배당에서 연세든 할머니 성도들만 데리고 사역하시는 목사님입니다. 낡아서 곳곳에 갈라지거나 기울고, 장마철 빗줄기도 한겨울 북풍한설도 막아주지 못하는 교회당 때문에 예배시간이면 늘 한숨짓는 실정이랍니다.

일전에 한 차례 지면에 이 교회의 안타까운 사정을 소개해드렸는데, 통 후원이 들어오질 않는다며 다시 신문에 내달라고 하십니다.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신문에 내기는 어렵다고 설명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올 겨울 내내 추위 속에서 기침과 콧물 쏟아내며 예배할 성도들의 다급한 상황 외에 다른 원칙 따위는 고려할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요구를 하시는 목사님들 중에는 가끔 민망한 태클을 거는 분들도 계십니다.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게재한 기사 속에 잘못 표현하거나, 누락된 부분이 있다며 다시 기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제 눈에는 지극히 사소한 요소들로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절박한 대목일 터이기에 뭐라 항변 드리지도 못합니다.

이 겨울, 저는 비슷한 요청을 또 여러 곳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왜 돈도 없는 신문사에게, 별 힘도 없는 기자에게 이토록 안달할까 생각하면 솔직히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이분들은 저를 대신해, 독자들을 대신해, 다른 수많은 목회자들을 대신해 누군가는 꼭 가야했을 외롭고 고독한 사역지로 뛰어든 분들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자 복음의 일꾼인 우리 모두는 다 그분들께 적잖은 빚이 있는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가진 것을 좀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그분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이 결코 본인의 잘못이나 무능 때문은 아니니까요. 그분들 덕에 우리는 좀 더 나은 사역지에서, 좀 더 편한 여건을 누리며 감히 동역자 행세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12월이 시작됐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바쁜 계절입니다. 하지만 나만 빨리 앞으로 가려고 하지는 맙시다.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천천히 나란히 손잡고 전진하는 모습이면 더 좋겠습니다. 저희 기자들 또한 더욱 친절히, 성심껏 목사님들의 신음과 탄식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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