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왕 목사의 아름다운 자연사진 이야기] (2)주제가 있는 사진-산성(山城)

몇 년 전 노회의 주관으로 언젠가 꼭 한 번 가고 싶었던 발칸반도 여행을 떠났다. 크로아티아를 중심으로 여러 곳을 다니는 버스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육로의 긴 여정 동안 버스 안에서 그저 휴식만 하지 않는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차창을 지나는 주변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는 작업을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오늘 소개하는 사진은 그 중 하나로 정확히 어느 지역이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발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산위의 요새와 더불어 이웃하고 있는 예배당을 포착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경치 사진이지만 필자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우리에게 진정한 산성(요새)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었다.

물론 중세 사람들은 박해를 피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 요새를 만들곤 했지만, 그들은 그 요새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바로 곁에 예배당까지 높다랗게 지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람들이 육신을 지켜 주는 산성만으로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그 점에 있어서는 오늘 우리들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지금 현주소로 삼고 있는 진정한 산성은 어떤 것인가?

목사인 필자는 평생 설교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설교자가 보는 성경과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보는 성경은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경을 가지고 성도들이 듣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설교를 한다는 것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설교와 성경공부가 동일한 텍스트를 가지고 하는 사역이라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성경 공부는 이성적인 연구를 통해서 가르치는 자의 주관이 분명해야 한다면, 설교는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성경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찾아내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바로 설교의 핵심인 주제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제가 분명한 설교는 그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그 내용전개도 힘차게 이루어지지만, 설교가 마치 성경공부처럼 설교자의 의도대로만 만들어지면 주제가 모호하고 공감대도 미약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경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설교자가 대언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설교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서 사진 작업을 마치 설교 준비하듯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인즉슨 자연사진은 스튜디오처럼 연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인위적으로 반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자체에서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

물론 그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선 구도나 포커스나 밝기에 신경을 써서 자연을 사진에 담고, 그 사진에서 주제가 되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방식이 된다.

마치 화가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보는 이마다 그 그림에 대한 느낌이 각기 다른 것처럼, 사진작가는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을 통해서 주제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물론 그 느낌이 모든 감상자들에게 동일할 수는 없지만, 주제를 담은 간단한 제목을 작품에 붙여주었을 때 보는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 각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설령 그것이 작가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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