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멀리 보지 않으면 항상 실패한다. 눈앞의 사실을 보고 결정하면 그것은 멸망을 예고할 뿐이다. 눈앞의 사실이 저 멀리 있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열 번도 더 뒤집히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더 호흡이 길고, 누가 더 오래 참고, 누가 더 끈질기게 눈앞의 사실을 직시하고, 그 가는 길과 방향을 정확히 파악해내느냐의 전투이다. 결국 누가 더 멀리 볼 수 있느냐가 결정적 승패의 요인이다.

우리의 삶도 사역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길인 우리의 여정도 마찬가지이다. 보다 큰 틀에서 보아야한다. 나 하나 살려고 하면 나도 살지 못하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어려워질 뿐이다. 부분은 전체에 포함될 수밖에 없고, 그 전체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는 개체는 아무도 없다. 어떤 천재도 그가 밟고 있는 땅이 무너져 내리면 같이 그 깊은 땅 속으로 파묻혀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와 사회를 의식해야하고, 그 역사와 사회를 의식함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의 활동무대인 역사와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해야한다. 이 전체로서 나를 부인하는 것은 내게 절대적으로 손해이다. 공기가 오염되고, 하천이 오염되었는데, 나 혼자 맑은 물에 독야청청할 수 없다. 구정물 뒤집어쓰고서라도 그 오염된 하천의 원인 되는 구정물 진창을 거두어 내야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전체를 위한 생각을 하고, 전체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내게 아주 유익이기 때문이다.

아주 짧게 기본적으로라도 우리는 적어도 20년 뒤는 내다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이루어야한다. 씨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의 역할이 분담되어야한다. 씨 뿌리는 자가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두어야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한 뼘 짜리 일 밖에 하지 못한다. 씨 뿌리는 자는 뿌리는 자의 기쁨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하면 된다. 누군가가 후에 내가 뿌린 씨를 거두어 이 역사와 사회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의 몫이요 하나님의 몫이라 생각하면 별 갈등 없이 기쁠 수 있다. 적어도 역사는 그와 같은 큰 틀에서 멀리 본 선각자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고 또 발전되어왔다. 우리가 역사를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역사를 의식하고 그 역사 속에 살아야한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라는 진영을 확고하게 지킬 사회설득을 이루어야한다.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한다. 기독교는 사회설득에 실패했다. 우리가 옳고, 우리가 바르고, 우리가 따뜻하고, 우리가 열심이라고 해서 다 끝나지는 않는다. 우리의 그러함이 우리 주변에 어떻게 전달되어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생각과 느낌과 생활에 도움 혹 미움을 주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사회 속의 존재로서 당연히 생각해야만할 과제이다. 그것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교조이고 독선이다. 믿음의 문제를 떠나서 옳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다.

우리는 집을 지었고, 그 집을 개방하여 마음껏 사용하고 놀고 이용하고 자유롭게 누리라고 호혜를 베풀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 중에 우리가 지은 집의 문지방을 넘어 교회의 마당에서 그리고 그 품을 편안하게 느끼고 누리고 사용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너무 어려워 그 문턱을 넘어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문지방을 없애버리고, 또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 짊어지고 가서 그들에게 찾아가 나누어 주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성채에 갇힌, 좋은 점은 많으나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나 쌓이고, 작은 흠집이 전체로 오인 받아 지워지지 않는, 오해의 낙인을 가질 것이다. 결국 이해 못하는 세상을 안타까워하다 이 세상을 겉돌다 떠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해 못하는 세상을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이해시키지 못하는 우리를 돌아보아 개선해야한다.

한 가지 꼭 생각하고, 적어도 짧게 20년 뒤라도 바라보며, 이 ‘사회설득’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기독 언론인재를 양성해야한다. 그들이 이 사회의 여론주도 그룹의 첨병으로 최전선에서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역할자로 세워져야한다. 이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전략적 사고를 가지지 않으면 우리는 설 자리가 없다. 언제나 소중히 키워진 인물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최고의 역할을 할 것이다. 물량이나 또는 요구하는 질적 수준이나 최고여야 하고 바른 이들이어야 한다. 자존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워야한다. 각 편집 데스크마다 최고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위치해야한다.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고 작심하고 있다. 그냥 탓이나 하고 멍하니 있으면 20년 뒤에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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