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티모시 켈러 지음, 복있는사람)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새롭게 된 마음의 표지는 무엇일까?’라고 묻고 답한다. 그리스도를 의뢰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해야 할까? 이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저자는 고린도전서(3:21~4:7)를 다룬다.

본문에서 바울은 교인들이 당을 짓고 서로를 구분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마음의 교만과 자랑에서 찾았다. 교만과 자랑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함께할 수 없다. 세상에 화평이 없고 서로 간에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자존감(self-esteem)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자만심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의 근원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문화에는 그런 믿음이 있다).

세상에 범죄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사람에게 있는 ‘오만함(hubris)’을 그 대답으로 꼽는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교만’ 혹은 ‘자만심’을 뜻한다. 자고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악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 현대 서구문화는 이와 정반대로 대답한다. 현대 교육의 원리, 죄수들을 대하는 방식, 대부분 입법의 토대와 현대 상담의 출발점은 위와 같은 전통적인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믿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주변에 더 큰 위협이 된다고 한다.

복음적 겸손은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사물을 자신과 관련지을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좋게 보일까? 지금 내가 여기에 있고 싶어서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복음적 겸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경험과 대화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 짓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친다.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자기를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누리는 복된 평안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참된 복음적 겸손은 부풀려지지 않았지만 ‘가득 채워진 자아’를 말한다. 이런 자아와 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울은 애초에 자존감을 둘러싼 온갖 말의 유희에 빠져들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말한다. “제게는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겸손의 비밀이다.

참으로 복음적 겸손을 누리는 사람은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복음을 통해 겸손해진 사람이다. 복음으로 겸손해진 사람의 자아는 그냥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는다. 우리가 걸을 때 발가락이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런 사람의 자아도 그렇다. 날 좀 알아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대견해 하지도 않는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비판을 들어도 아연실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비추어 자신이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선언한다.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믿는 순간에 우리가 직접 행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시고 우리를 자녀로 맞아들이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받으셨기 때문에, 나만의 이력을 쌓기 위한 일들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에게 좋은 평결을 받기 위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순전히 즐거움 때문에 일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돕도록 협력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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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인정도 아닌(이무석·이인수 지음,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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