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교리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종교개혁
강단개혁 통해 사상 있는 그리스도인 만드는 변화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각종 학술대회와 기념행사,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 2017년을 보면 마치 ‘새로운 개혁’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개혁과 변화는 없고 기념만 남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말 그대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좌담을 통해 ‘기념’이 아닌 오늘의 ‘개혁’과 ‘변화’를 담길 기대한다. 구호만 넘치는 죽은 고백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리고 한국교회의 내일을 여는 대안을 듣는다. <편집자 주>

강석근 국장(이하 강 국장) :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종교개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또한 개혁신학을 명료하게 정의한다면 무엇입니까?

이승구 교수(이하 이 교수) :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말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루터는 사실 처음부터 종교개혁적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칼빈이 이를 확고히 했습니다. 성경으로 가는 것이 곧 개혁신학입니다.

▲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이하 김 목사) :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루터를 비롯해 종교개혁자들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를 통해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결국 (교부들의) 신학이 있었기에 (중세교회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강 국장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그러나 정작 구호만 있는 것 같습니다.

김 목사 : 신학의 도움이 없이는 성경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루터는 전형적인 중세교회 사람이었습니다. 가톨릭과 다른 교파를 만들 생각도 없었으며, 거대한 청사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을 때 신선하게 들린 이유는 그의 주장이 교부들의 신학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원천인 성경과 교부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세교회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교회를 성경으로 돌아가게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을 통해 성경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루터가 성경과 교부들을 통해 발견한 인간관입니다. ‘인간이 누구인가?’ ‘인간은 왜 끊임없이 죄를 짓는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인간관이었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이신칭의의 동기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강 국장 : 최근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이 교수 : 인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즉 인간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구원에 대해 예수님의 공로를 철저히 인정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에 중세교회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예수님의 공로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단사상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노력주의가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개혁해야 할 것은 외부가 아니라 이러한 잘못된 교리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신칭의 교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교리를 제대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신칭의를 제대로 받아들이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이 실천됩니다.

강 국장 : 오늘 한국교회의 교단 정치나 신학교, 성도의 삶에서 개혁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목사 : 아이러니한 것은 조국 교회가 칼빈신학이나 개혁신학을 추종하고 연구하면서도 그들의 경건이나 영성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났었다는 것입니다. 루터나 칼빈도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났기 때문에 개혁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신학이 외연적 확장이라면, 그것의 내포적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길을 갈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야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회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논리로는 알면서도, 그것을 겨냥한 목회를 하지 않는 것은 목회자 자신이 반복적인 회심의 경험 안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회심의 설교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회심에 대해 설교를 하면 정죄한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신학교 개혁의 첫 번째 과제는 회심을 깊이 경험한 사람들이 학교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소명이 없는 사람들이 신학교에 올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신학교는 경영이라는 경제논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신학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매년 교회 예산의 0.5~2%를 교단의 신학교육 기여금으로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신학교를 재정적인 부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세 번째 과제는 가르치는 사람 즉 교수의 엄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목회에 경험 있는 사람이 표준적인 개혁주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대신 철저한 경건훈련이 따라야 합니다. 교단은 개혁주의자들이 했던 정치의 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 이승구 교수
(합신대)

이 교수 : 주님과의 깊은 만남, 즉 성령 충만이 항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제도가 실제로 실현되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다들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제도를 뜯어 고치려고 하는데, 사실 제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장로교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우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가 성경에 그리고 성령에 충실한 사람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만 주장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여전히 중세교회의 요소가 있습니다. 목사가 사제의 역할을 하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제단, 성전, 성전건축, 사순절, 성지순례, 강단십자가 등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어져야 종교개혁자의 후예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가 사용했던 평신도라는 용어도 문제입니다.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성직자입니다. 교회에서의 성직자가 있고, 일상생활에서 성직자가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가정주부 등 모든 일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거룩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며 성직입니다. 진짜 성령 충만해서 성경대로 살면 이런 것은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강 국장 : 교회개혁의 첫 단추는 강단개혁일 것입니다.

김 목사 : 조국 교회의 재앙은 신학이 사라진 설교입니다. 칼빈주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설교 안에 칼빈 신학이 없습니다. 이단을 제외하고 한국교회 설교에서 신학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설교가 신학을 말하지 않는 종교적 연설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사상을 설명하는 언어행위입니다. 설교자의 소명은 불붙은 신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국 교회에서는 신학이 없는 설교, 성경과 상관없는 개인의 생각이 설교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신학교육에서 안타까운 것은 신학교를 졸업한 후 그 학생들을 성경적 신학에 불붙은 설교자로 만들고자 하는 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목회할 때는 신학이 없는 설교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교단은 한편으로는 신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기적으로 목회자들을 재교육하는 일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강 국장 : 강단개혁 뿐만 아니라 삶에서 개혁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이 교수 : 좋은 설교는 사상이 있는 설교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기독교 사상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가 설교를 들으면 기독교에 대한 사상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야 합니다. 설교의 목표는 청중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진짜 영적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목회의 최종점은 문화목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김 교수 : 터툴리안의 <이방인에게>라는 저서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제3의 족속’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냈던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그 두 부류의 사람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목회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기독교 사상가로 만드는 것입니다. 루터나 칼빈 등은 신학과 철학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건축, 음악,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사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신학이 있는 설교는 중생과 회심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성경적 세계관, 인생관으로 무장시켜 줍니다. 성경적 신학 사상이 없는 설교는 뼈대 없이 흐느적거리는 낙지 같은 기독교인들을 양산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과 맞서 싸우며 그것을 개혁할 수 없습니다.

강 국장 : 최근 제2의 종교개혁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김 목사 : ‘제2의 종교개혁’이라는 표현 속에는 신학적이고 포괄적인 문화에 대한 개혁보다는 윤리적 변혁에 대한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강 국장 : 한국교회와 세계는 인공지능(AI)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의 한 복판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합니까?

김 목사 : 이제 인류사회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면서 과학 기술의 융합적 발전으로 인해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이러한 현대의 사조를 관통하는 세속의 정신을 드러내어 교인들에게 이해시키고 성경적이고 대안적인 이해를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교수 : 기독교 사상에 충실한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을 것입니다.

김 목사 : 사람들의 착각 중 하나는 기독교 사상은 목사나 신학자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사상은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가를 길러내는 것이 저의 목회에 목표입니다.

강 국장 :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김 목사 : 그 질문은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과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르나르두스는 “지식이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과 지식은 하나이며, 지식 그 자체가 곧 사랑입니다. 사상이 기초라면 건물이 삶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리에 부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빌1:9). 그리고 그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교수 : 종교개혁에 충실해야 합니다. 개혁자들이 했던 것처럼 성경에 근거해 삶의 모든 것이 고쳐져야 합니다.

정리=정형권 기자 hkjung@kidok.com
사진=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