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 촉발된 종교개혁의 정신과 가치, 경건과 개혁의 삶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걸린 루터의 '95개 논제'. 이날 촉발된 종교개혁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려는 노력들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500주년을 맞은 종교개혁의 기쁨보다는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에 역행하는 우리의 모습에 쓰디쓴 회개의 잔을 들이켜야 할 때이다. 명분만 남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보름스 의회에서 담대하게 항거했던 루터처럼 관념적 신앙에 저항해야 한다.

“성경과 명료한 이성이 나를 정죄하지 않은 한,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뿐이다. 나는 어떤 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 않겠다. 양심에 어긋나는 길로 행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 서 있는 나는 달리 행할 수 없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내걸면서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이후 1521년 보름스 의회 앞에 선 루터는, 이 같은 신앙고백으로 오로지 신앙양심에 자신의 생명과 가치를 걸었다. 서슬 퍼런 로마가톨릭의 일방적인 항복 권고에 대한 루터의 신앙고백적 항거는 마침내 프로테스탄트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 오늘의 프로테스탄트들이 500년 전에 일어났던 종교개혁 정신과 가치를 기념하고 있다. 무엇보다 총체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부흥을 위한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려는 노력들로 올 한해를 보내고 있다.

우선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접촉점을 계기로 분열된 한국교회의 연합과 진정성 있는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 정점은 한국교회 연합예배였다.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등 장로교단을 비롯해 기성, 기감, 기하성 등 22개 교단들이 10월 29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교회개혁이 오늘과 내일에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임을 받아들이고 경건한 삶을 통해 도덕적, 윤리적 삶의 모범이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종교개혁 정신 계승을 선언했다.

기성 신상범 총회장 사회로 드린 연합예배는 루터회 진영석 총회장 성경봉독, 예수인교회(민찬기 목사) 찬양대 찬양, 예장합동 전계헌 총회장 설교 순으로 진행했다. 예장통합 최기학 총회장과 기감 전명구 감독회장도 각각 환영사와 개회사로 함께 했다.

▲ “500년 전 종교개혁, 우리가 완성해야 할 과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에서 예장합동 전계헌 총회장이 빛과 소금의 한국교회 역할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권남덕 기자 photo@kidok.com

전계헌 총회장은 “종교개혁은 당시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개혁하려는 운동이자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며 “처음 교회는 순결하고 순수했으나 사도들의 외치는 소리를 사람들은 듣기 싫어했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도 그렇지 않나 싶다”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종교개혁은 500년 전에 끝난 운동이 아니라 현대에도 계속되어야 할 운동이라며 “나부터 빛을 잃고 맛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 되고 소금이 되는 축복의 역사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예장대신 이경욱 사무총장, 예장순장 서정환 부총회장, 그리스도교회협 최연기 부총회장이 ▲불의한 일을 버리고 거룩한 교회의 성도로 살기에 힘쓴다 ▲참된 신앙은 반드시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기희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 등 한국교회 개혁 선언문을 발표했다. 기하성 이영훈 총회장은 비전 선포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개혁하고 다시 세울 기회를 주신 것”이라며 남은 과제의 실천을 강조했다.

이번 연합예배는 개신교가 초창기 모습과 다르게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종교개혁 500주년 이름으로 함께 모여 새 출발을 다짐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이는 한국교회 교단장회의 재구성, 하나 된 연합기관을 위한 노력 등으로 교단장들이 꾸준히 모이면서 소통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루터회는 3년 전부터 장소를 예약하며 연합으로 한국의 개신교단들이 모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애썼다.

교단 연합 외에도 신학계, 문화계는 물론 목회현장에서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활동들이 활발하다. 특히 신학계와 목회현장에서는 종교개혁이 갖는 오늘의 의미를 찾아, 진정한 변화와 개혁의 장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이 역력했다. 문화계에서는 종교개혁 정신의 핵심 가치를 재해석한 뮤지컬과 음악회 등 다채로운 공연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했다.

10월 29일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보내고 10월 31일 종교개혁기념일을 맞은 한국교회는 이제 기념 그 이상의 유의미한 실천으로 무수한 목숨과 바꾼 종교개혁의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과제를 다시 안고 있다.

역사적인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변화를 다짐했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를 둘러싼 위기 상황은 그대로다. 아니 종교개혁기념일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목회세습 문제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역기능적 모습은 더욱 고착화되고, 갈수록 드세지는 이단의 공격 앞에 진리를 외치는 교회의 소극적 모습 등은 프로테스탄트 후예라는 이름을 무색케 한다. 내부적으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15세기 교회 못지않게 한국교회는 긴급하게 개혁되어야 할 요소를 많이 안고 있다.

지금은 500주년을 맞은 종교개혁의 기쁨보다는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에 역행하는 우리의 모습에 쓰디쓴 회개의 잔을 들이켜야 할 때이다. 명분만 남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보름스 의회에서 담대하게 항거했던 루터처럼 관념적 신앙에 저항해야 한다.

또한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실천으로 세상과 괴리된 한국교회 이원론과 맞서야 한다. 성경대로 가르치고, 바른 행함으로 지속가능한 개혁된 교회의 가치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500년 전의 종교개혁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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