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호 목사
로뎀교회, 국제신대 설교학 교수

본문 선택 후 묵상과 연구를 거쳐 중심메시지(CMT)를 발견했다. 그 중심메시지를 따라 주해개요도 작성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우리는 연관성(relevance)을 발견해야 한다. 미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문을 자연스럽게 오늘날로 연관시켜야, 후에 적절한 적용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기억하자. 자연스러운 연관이 적절한 적용을 이끈다. 이제 몇 주간 본문이 이끄는 설교의 핵심 기법 중 하나인 연관성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연관성이란 무엇인가?
연관성은 본문과 청중의 ‘의미연결 통로’다. 설교에서 본문의 의미가 연관성을 통해 청중에게 전해진다. 설교자가 본문의 의미를 아무리 잘 파악해 전달해도, 그것이 어떻게 오늘날의 삶과 연결되는지 제시하지 못하면 설교는 힘을 잃는다. 종종 설교자들이 원어를 사용하고 본문의 구조까지 치밀하게 분석해 말씀의 의미를 심도 있게 전달하지만, 청중을 깊은 깨달음이 아닌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것을 본다.

깊은 본문연구가 문제였을까? 아니다. 많은 경우 연관성이 부재된 것이 진짜 문제였다. 연관성이 빠진 본문의 의미전달은 설교로 보기 어렵다. 설교가 단순히 본문 주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의 비유를 통해 연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스토트(Stott)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라. “설교는 단지 강해(exposition)가 아니라 소통, (communication)이며, 단순한 본문의 주해(exegesis)가 아니라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스토트의 말처럼 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넘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씀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본문의 의미를 깊이 있게 연구해서 제시하고 있는 주석들은 이미 차고 넘쳐난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그 의미가 어떻게 우리 삶과 연관되는지를 발견하고 청중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설교자가 해야 할 임무다.

그렇다면 설교에 있어서 연관성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윌하이트(Keith Willhite)는 연관성을 설교자가 선택한 본문의 내용과 청중의 삶 사이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연결고리(communicative link)’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연관성은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가 현시대에도 어떻게 시의적절함(pertinence)과 적용가능성(applicability)을 갖는지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하다.

연관성, 이미 성경에 있는 요소
연관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설교자가 연관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세속적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연관성은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심리적 조작도 아니다. 성경을 오늘 시대에 맞게 연관시키려는 우리의 노력 이전에, 이미 성경 자체가 모든 시대를 초월한 연관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바울은 그 당시 수고하는 사역자들이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바울은 신명기 25장 4절을 사용해 일하는 소가 밟아 떠는 곡식의 일부를 먹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구약의 말씀으로 자신의 시대와 연관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역자가 받아야 할 삯은 소가 먹는 곡식으로 연관했다. 바울은 이 연관을 통해 주인을 위해 일하는 소가 밟아 떠는 곡식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가 삯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바울이 사용했던 연관의 흐름을 아래 도식으로 확인하라.

일하는 소 ----> 밟아 떠는 곡식을 먹을 수 있음 : 구약 시대
↓ ↓
사역자 ----> 삯을 받아야 함 : 바울 시대

성경 자체에 이미 모든 시대를 진리로 연결하는 연관성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연관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본문의 의미를 오늘날에 적합하게 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마땅히 해야 할 수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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