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순례자의 길] (11)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사진 1  바람 불어 흔들리는 갈대밭에서 카메라 잡은 손까지 흔들린다.

사진 2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했던가? 하얀 메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사진 3  보라색 꽃을 피운 쑥부쟁이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격렬한 춤을 춘다.

사진 4  앞뒤좌우 사방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을 타고 갈대들이 아름다운 물결을 이룬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날려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눈을 뜨지 못해 애를 먹는다. 바람이 불면 제멋대로 펄럭이는 옷깃을 여미게 된다. 더 큰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꺾이고 심하면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 또 바람이 불면 농사용 비닐하우스가 벗겨져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애써 가꾸어 놓은 벼와 곡식들이 땅바닥에 누워버리고, 탐스럽게 익어가던 과일들이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바다에서는 고기잡이배들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불어야 한다. 바람이 불어야 꽃을 피우고, 바람이 불어야 수분을 받아 열매를 맺고, 바람이 불어야 씨앗이 흩날려 번식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들이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 비구름도 몰고 와서 생명이 자라도록 단비를 내린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를 만들어야 물 속 용존산소도 증가하고, 한 번씩 큰 바람이 불어서 물 속 깊은 곳까지 뒤집어야 건강한 바다가 된다.

구약성경에 히브리어 ‘루아흐’라는 단어가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헬라어 ‘프뉴마’라는 단어가 있다. 두 단어는 ‘하나님의 영’ 혹은 ‘성령’이라고 할 때 등장하는 ‘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이 두 단어는 ‘숨’ 혹은 ‘호흡’, 그리고 ‘바람’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 두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움직이는 공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가장 먼저 바람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얼어붙었던 시내가 녹아서 돌돌돌 소리 내며 흐르듯이, 얼어붙어 경직된 내 속에 ‘그 프뉴마’가 불어오면 영혼이 따스한 기운에 녹아내리고 감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뜨거운 태양 아래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제 각각 건들거리며 서 있던 갈대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눕듯이, 잘나고 잘난 사람들이 제 잘난 맛에 살아가다 ‘그 프뉴마’가 뜨겁게 불어오면 자기주장 내려놓고 ‘그 프뉴마’에 순응하여 한 방향으로 한 뜻으로 하나가 된다.

큰 바람이 불어 와 바다 속 깊은 곳까지 뒤집어엎고 늠름하게 서 있던 거목도 꺾어버리듯이, 우리의 견고한 진을 뒤집고 부수는 강력한 ‘그 프뉴마’가 불어 닥치면 엣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하늘소망을 가지고 걸어가는 순례자의 길에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성령의 바람 ‘그 프뉴마’가 불어야 한다. 내 힘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에 ‘그 프뉴마’를 기다린다. 내 지혜로 찾을 수 없는 길이기에 ‘그 프뉴마’를 기대한다. ‘그 프뉴마’가 불어오면 순례자는 노래하며 길을 가고, ‘그 프뉴마’가 불어오면 순례자들의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된다. ‘그 프뉴마’가 불어오면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오늘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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