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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종교개혁 500주년 특별설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계획 (히 2:10)
  •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 승인 2017.10.20 14:12
  • 호수 2125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 십자가를 자랑으로 삼고 복음의 비밀인 경건에 이르는 성도의 삶 돼야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0)

■ 설교의도
위대한 영적 각성과 개혁의 시기를 살다간 믿음의 거목들이 보여준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능력의 비밀은 십자가에 대한 벅찬 감격이었다. 성경의 모든 교훈도 십자가에 걸리지 아니하면 한낱 윤리적인 교훈이나 한 종파의 종교적 습관의 나열에 불과하다. 기독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 가운데 성취되어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운데 십자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드문 것이 사실이지만, 십자가의 사랑에 온전히 사로잡힌 사람 역시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체계적인 깨달음보다는 실생활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십자가와 그 십자가가 중심이 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지식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원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의미, 십자가의 의미와 십자가를 자랑삼은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조국교회의 강단이 선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설교 주제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뜻 깊은 해, 십자가에 대한 벅찬 감격과 어두운 신앙의 눈이 뜨이는 복스러운 각성이 온 땅 위에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 김남준 목사
(열린교회)

종교개혁의 중심에는 성경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의 핵심에는 복음이 있었는데, 바로 인간의 구원이 오직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적 고난을 당하심으로 이루신 새로운 의로써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3:14).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수단인데, 이것도 은혜로써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1513년 경, 마르틴 루터는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감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만납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비텐베르크 탑에서의 체험도 그 핵심은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던 로마가톨릭의 가르침과 결별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뿐이 아닙니다. 칼빈을 비롯한 모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회심도, 그 한복판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조국교회가 그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복음의 영향력을 심대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십자가 복음을 통한 강력한 회심의 역사와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 경험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이 자리한 히브리서 2장은 견고한 신앙생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특별히 본문은 우리의 신앙이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든든히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견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에 대해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했는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답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있어서는 두 가지로 의견이 나뉩니다.

첫째로 가설적 필요론(hypothetical necessity)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속죄나 구속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보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개혁자들, 심지어 칼빈까지도 이 의견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그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 등이 모두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이었으나 하나님이 굳이 선택하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다른 길이 있었으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죽이셨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며,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났다(롬 5:8)고 선언하는 성경의 진술과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절대적 결과적 필요론(absolute consecute necessity)입니다. 성경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이것은 구원이 실현되어져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다시 화목을 이루게 되는 일을 가리키는데, 이 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꼭 필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강요당하셔서 어찌할 수 없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성품에 의해 필연적으로 그리하셔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안셀무스와 개혁파 정통주의자인 튜레틴 그리고 존 오웬 등에 의해 지지되었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성경에 부합하는 견해입니다.

우리가 이 절대적 결과적 필요론(absolute consecute necessity)이 보다 성경적이라 보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지은 죄의 크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마주하는 당사자가 누군가에 따라서 그 죄의 크기는 현저하게 달라집니다. 유감이 있는 이웃을 향해 구두를 집어던졌다고 칩시다. 상대가 그 구두를 피해 아무런 상해도 입지 않았다면 처벌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진 기자는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시대가 지금이고 상대가 대통령이었으니 3년이지, 전제왕권 시대에 황제에게 그렇게 했다면 단순히 사형으로 끝나지 않고 멸문지화를 당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죄의 크기도 커지는 것인데, 인간이 범죄한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상대가 하나님이시기에 선악과 하나를 따 먹은 일이 무한한 크기의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대체 그 범죄에 대한 벌의 크기는 얼마나 컸기에, 그 벌을 대신 받으려면 얼마나 무한한 크기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기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셔야 했던 것일까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인 동시에 지극히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공의가 희생되지 않고, 공의 때문에 사랑이 멸시되지 않는 완전한 하나님의 성품에 만족되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켜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십자가 위에서 푸심으로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담당하게 하사 우리를 형벌에서 면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다시 화목한 관계로 돌아올 수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조금도 희생되지 않고 입 맞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사역의 완전성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세우셨던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완성에 대한 모든 계획이 십자가 사역을 통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완전합니다. 이 십자가 사역의 완전성은 네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역사적 객관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요 19:34~35). 간혹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역사적 실재성을 부인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다른 기록들 역시 사실로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약 성경의 모든 기록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는 확신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둘째로 속죄의 최종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요 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공로가 충분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가톨릭의 주장처럼 성인들의 공로를 의지하고 인간의 선행을 보탬으로써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지불된 최종적인 속죄를 통해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받음에 있어 자신이 더할 공로가 없음을 알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중보적 독특성입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속죄적 죽음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하셨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단지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셨더라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많은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그것들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중보이심을 믿고, 그 이외에 다른 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모든 기대를 포기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단순히 영혼이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 천국에 가게 된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인간으로서의 참된 행복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무엇으로도 나를 구원할 수 없고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다른 모든 길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내재적 효능성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적으로 효력을 가져옴을 가리키는 것입니다(히 9:14).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실제로 죄인들의 마음과 영혼에 어떤 효과를 미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저 장엄한 희생의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끼쳐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감화적인 모범을 보여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으로 이를 압니다.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들이 복음과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회개할 때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도덕적 결심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 안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입니다. 마치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영적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실제적 변화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예전에는 전혀 없던 세 가지 감각, 곧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 용서에 대한 신령한 감각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룩된 내재적 효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다시 창조의 목적대로 돌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용기를 잃어버렸을 때, 죄와의 싸움에서 거듭 지기만 하는 자신이 절망스러울 때,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은혜의 샘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아무리 깊이 샘을 파도 우리의 갈한 목을 축일 수 있는 그런 효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랑, 십자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랑이 오직 십자가뿐임을 노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영원한 계획을 이루시는 통로라면, 십자가는 그 통로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는 2000년 전에는 단지 죄인을 죽이는 형틀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었음을 회고하고 또한 용서받은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십자가 사건에 직면함으로써 경건을 배웁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 떨리는 두려움을 경험하고, 또 십자가에서 나타난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감격함으로써 복음의 비밀인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십자가를 자랑으로 삼고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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