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논단
[논단] 참된 목자가 되라정연철 목사(양산삼양교회)
▲ 정연철 목사(양산삼양교회)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받는 핍박과 고통 그리고 죽음. 우리가 참된 목자상을 논하게 될 때 구약의 선지자상과 비교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어찌보면 참된 목자는 세상에서도 저주받은 직책이라 보는 것이 성경의 정신으로 볼 때는 부합된다 할 것이다. 신앙적으로는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그 삶의 실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삶을 타고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회자는 구약시대와 다르다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시대가 변해도 이러한 맡은 자의 사명은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성도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이 성취된 전시대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말씀 맡은 자 역시도 구약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할 때에 오직 십자가에 생명을 내어 놓기 위한 도구로서의 사명감이 부여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일과 직책이 주어지면 그에 합당한 현실적인 대가가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특별히 힘들고 고통이 수반되는 일에는 더 큰 대가로 보상받게 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고통받는 삶에는 현실적으로 더 큰 보상이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찌보면 구약의 선지자들은 죽어도 문제요, 살아도 문제가 되는 존재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음에 내몰린 자요, 살아도 자기생존을 위한 삶이 주어져있지 않다. 그렇다면 목자가 자기 생존을 위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바로 이러한 고통과 갈등과 아픔이 주어지는 자리가 바로 참된 목자의 자리이기에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한 비교는 매우 적절하다 할 수 있다.

목사의 선포된 말씀대로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진심으로 말씀대로 살고자 하고, 생명을 외치는 복된 말씀에 매료되어서 세상의 기쁨보다는 생명의 말씀이 주는 기쁨으로 살아간다면, 생명의 말씀만을 전했을 때 복음으로 인한 기대감도 생기게 되고 목사로서의 사명감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겠지만 양떼들의 속성이란 현실에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즉각적인 반응은 있지만 오래 두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즉 겉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말하는 듯하지만, 곧장 자기 생존을 위한 자기 길을 달려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신앙의 삶이란 그들의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으로 여길 따름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하늘의 생명을 선포한다는 것은 더욱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현실들이 목사로 하여금 설교에 대한 헛된 기대와 착각을 버리게 하는 기회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사의 기대는 복음을 전하면 교인들은 말씀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죄인 됨을 자각하며,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면서 서로 은혜로 교제하고 진심으로 생명의 길을 가려고 힘쓰는 삶의 모습들을 보는 것이지만 ‘설교를 복음적으로 잘하면 복음을 원하는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목사를 생각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그렇게 되면 목사로서의 생활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를 갖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간섭은 구약의 선지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시며, 말씀 맡은 자로서 삶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신다. 저주받은 운명, 자기 영화를 누릴수 없는 존재. 덤으로 사는 삶.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저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선포하는 일에 목숨을 건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헛된 기대를 부수고 꺾어 버리는 방식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양떼들은 목사의 그러한 기대를 짓밟으면서 여전히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인도하는 목자도, 따르는 양떼들도 늘상 자기 입장에서 살아갈 뿐이다. 자신을 버린 자로 복음을 전하고, 자신이 버려지기 위해서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입장의 굴레 안에서 복음을 이용할 뿐이다. 이처럼 복음은 끝없이 인간에 의해 훼손될 위기에 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동원하여 오히려 인간을 다스려 가시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과 인간의 관계이다.

복음의 삶을 당연한 듯 자부할 수 없듯이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바리새인들이든 예수님의 제자들이든 그들이 기여한 것이 없다. 나아가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어몰고 십자가를 회피하고 부인한 존재에 지나지 않던가? 그런 인간에게서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순전히 복음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이고 자신들의 능력 밖의 일일 따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참된 목자는 자신의 위상을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스스로 일하시고 성취해나가시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늘상 수치를 아는 존재이기에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한 참목자상은 목사를 목사되게 하는 말씀 맡은 자로서 사명과 삶의 큰 지침이 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