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순례자의 길] (7)파도가 왔다간 자리

사진1 바닷가 고운 모래밭, 파도가 왔다간 자리에 아름다운 무늬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한 번 왔다 간 파도가 남긴 흔적이다.

사진2 파도가 머물다 간 평평한 갯바위에는 온갖 생명들이 자라고 있다. 한 여인이 밀려 간 파도가 다시 오기 전에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채취하고 있다.

사진3 파도가 왔다 가고 또 왔다 가며 수없이 들락거리는 곳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긴 시간 지켜보면 바위에 부서져 흩어지는 포말들이 험준한 산골짜기에 내려앉은 운무 같이 아름답다.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진 곳, 파도가 왔다 간 자리에 물결모양의 패턴이 끝없이 그려져 있다. 남겨진 흔적의 모양은 왔다 간 파도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기후에 따라 다르고, 주변 지형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게 어떤 모양이든지 파도가 왔다 간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와서 잠깐 살고 가는 순례자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걸어간 자리에는 반드시 족적이 남는다. 우리가 앉았다 일어선 자리에도, 우리가 잠시 머물다간 자리에도, 우리가 놀다간 자리에도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까? 그렇다고 남겨질 흔적을 생각하며 그것에만 붙들려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흔적 만들기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저 행복하게 살면 된다. 맡겨진 일들을 즐겁게 하면서 그냥 앞을 보고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자연스럽게 흔적이 남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지 나름대로 아름다운 무늬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갯바위가 넓게 깔린 곳에도 파도가 들어왔다 나간다. 온갖 영양분과 생명의 씨앗들을 품은 파도가 머물다 간 갯바위에 홍합, 따개비, 거북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서식한다. 그리고 그 생명들은 파도가 한 번씩 왔다 갈 때마다 쑥쑥 자란다.

순례자의 길을 가는 성도가 지나간 자리에도 생명이 태어나고 자란다. 한 순례자가 왔다 가면서 생명을 잉태하고 다음 순례자가 왔을 때 생명이 탄생한다. 그 다음 순례자가 왔다 간 자리에 생명이 성장하고 성숙해져 간다. 순례자는 그저 왔다 간 것뿐이고 잠시 머물다 간 것뿐인 것 같지만 그 자리에는 생명이 잉태하고 탄생하며 자라는 것이다. 그 속에 생명을 품고 있는 순례자는 가는 곳곳마다 생명을 심고, 나게 하고, 자라게 한다. 생명을 흔적으로 남기는 순례자는 생명의 전달자다.

파도가 수없이 들락거리며 갯바위를 씻고 또 씻는 것을 본다. 힘 있게 밀고 들어오던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치면 속절없이 부서지며 하얀 포말을 남기고 물러간다. 파도는 또 다시 달려왔다가 깨어지고 부서져서 다시 물러간다. 파도는 지치지도 않고 다시 힘을 얻어 용감하게 달려와서는 부서지고 물러간다. 수없이 반복하는 파도의 도전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긴 시간 지켜보면, 바위에 부서져 흩어지는 포말들이 험준한 산골짜기에 내려앉은 운무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우리의 인생여정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도전이 이러하리라. 순례자의 길을 가는 자는 거룩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하여 도전하며 달려든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는 속절없이 부서지고 그 야무진 꿈과 비전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주저앉아버리지 않는다. 다시 힘을 내어 도전한다. 역시 깨어지고 부서지며 물거품이 되어 물러난다. 그리고 또다시 힘을 얻어 용감하게 달려든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힘을 얻고 일어나 부딪친다. 우리가 도전할 때마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 같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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