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9년부터 1453년까지 114년간 지속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백년전쟁이라 부른다. 이 전쟁은 두 민족을 대립시킨 요소들이 결합되어 일어난 전쟁이었다. 첫째 원인이 양국 왕실간의 오랜 적대감 때문이었다. 그 비극의 시작이 1088년이었다. 노르망디 공작(Duke) 윌리엄은 1088년 영국을 정복한 후 봉신국으로 취급했다. 이와 반대로 1154년 영국은 앙주제국 이후 프랑스 국왕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며 프랑스를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두 번째 원인은 영토 문제로 야기된다. 존 왕이 프랑스의 왕 필립 2세와 부빈전투를 벌인다. 여기에서 대패한 영국은 드넓은 서부 프랑스 땅을 빼앗기면서 수복을 다짐한다. 여기에서 경제적 이익이 막대한 프랑스 북부의 양모 주산지 플랑드르와 와인 산지 귀에느와 보드로도 양국 패권의 주요 거점이었다. 세 번째 전쟁 원인은 왕위 계승권 분쟁이었다. 1328년 프랑스 국왕 샤를 4세가 서거한 후 프랑스 귀족들은 선왕의 4촌 필립 6세를 국왕으로 추대한다. 이때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샤를 4세의 조카로 필립 6세보다 서열이 앞선다며 프랑스 왕위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역사의 재앙으로 기록된 100년 전쟁으로 비화된다.

백년전쟁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뉜다. 첫 국면은 1338년 이후 20년간 영국이 우세한 시기였다. 이때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 26세의 흑태자 에드워드였다. 당시 흑태자는 7000의 군사로 2만의 프랑스 병사를 무찔렀고 쟝 2세 왕까지 사로잡는다. 이때 에드워드 흑태자는 쟝 2세 왕을 포로가 아닌 왕으로 깍듯이 예우했고 때로는 시종처럼 그의 시중을 들었다. 쟝 2세는 영국으로 끌려가 막대한 배상금 지불과 영토 일부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되어 본국으로 돌아온다.

둘째 국면은 1369년에서 20년간 샤를 5세의 전쟁시기로 프랑스의 큰 승리 시대였다. 이후 30년간 휴전이었고 셋째 국면은 1413~1422년까지 10년간으로 헨리 5세의 전쟁으로 불리며 프랑스 북부가 영국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네 번째 국면이 바로 1429년부터 시작된 잔다르크 전쟁이다. 네 시기의 전쟁에서 2:2로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았으나 최후 승리는 프랑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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