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국 목사(하양교회)

▲ 김형국 목사(하양교회)

제비뽑기 선거제도의 원년인 2001년 9월 18일 제86회 총회가 충현교회에서 개회됐다. 개회예배와 성찬예식이 은혜스럽게 진행되고 임원선거에 들어가려는 순간,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장로총대들이 제비뽑기 선거제도의 비합법성과 규칙 위반을 지적하며 강단 앞으로 나와 선거를 저지했다. 당시 보기드문 총회현장 점거였다. 제86회 ‘제비뽑기 총회’는 역사적 오점을 남긴 채 불행하게도 그렇게 시작됐다.

금권선거 방지책으로 제비뽑기 출발

제비뽑기 선거제도는 2000년 진주교회에서 열린 제85회 총회에서 금권선거를 막아보자는 취지로 채택했다. 이듬해 한명수 목사가 원년 제비뽑기 부총회장에 선출된 뒤, 이번 회기까지 총 17명의 부총회장이 뽑혔다. 그동안 제비뽑기를 실시하면서 총회임원으로서 본분을 잘 감당한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리더십 부재로 원활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감각의 부족과 상당한 식견이 요구되는 교회연합 활동에 연속성과 전문성이 떨어져 교단 대표로서 고전을 겪는 모습을 누차 봐 왔다.

그래도 우리 교단은 세상에 모범을 보여야 할 교회가 추악한 금권선거로 지탄을 받고 있는 점을 내세워 제비뽑기를 고수해 왔다. 그리고 해마다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총회에 상정되었지만, 시기상조라는 이유를 들어 직선제를 거부해 왔다. 그러다가 2013년 제98회 총회부터 떠밀리듯이 제비뽑기와 직선제의 혼합제도를 채택하여 실시하고 있지만, 큰 실효는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직선제 도입하자’ 헌의 쇄도

제102회 총회를 앞두고 이번 총회에도 직선제로 환원하자는 헌의가 빗발치고 있다. 현행 혼합형 선거제도로는 확실한 리더십을 갖춘 총회임원을 선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 20년간 시행해온 제비뽑기 선거를 폐지하고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교단은 제비뽑기를 시행하면서 금권선거는 막았는지 모르지만, 후보자들끼리 변형된 담합이나 금품수수는 관행처럼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거기다 우후죽순 생겨난 지역협의회의 활동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적 행보 등은 끊임없이 구설수를 야기시켰다. 총회임원들끼리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 하는 하극상이 연출되어 리더십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선거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정상을 벗어난 일련의 부정적인 행태들이 곳곳에서 벌어져도 오로지 금권선거만 부르짖으며 현행 선거제도를 고집해 왔다.

이런 가운데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통해 선출된 총회장 주변에 소위 비선실세가 형성되어 이상한 조직까지 등장했다. 총회장의 리더십은 찾아볼 수 없고 낯선 인사들이 총회를 혼탁하게 흔들어도 모르는 척 외면해야 했다. 그만큼 총회는 부패해졌다. 교단의 위상이 추락하고 총회 내부 곳곳이 곪아가고 있는데도 개선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비뽑기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아

필자는 제비뽑기 선거제도로 출마하여 당선된 총회장이 제대로 직무를 감당하지 못해 서기로서 선거관리위원장 직임을 맡은 적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총회서기와 선관위원장으로서 직무를 감당하면서 느낀 점은 더 이상 교단이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금권선거의 비리가 얼마나 과했으면 차선책으로 제비뽑기를 선택했는가 이해도 되지만, 반대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던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교단은 제비뽑기를 채택하면서 시계(視界)가 멈췄다. 총회장의 권위도 제대로 서지 않고 총회본부를 온통 이권의 집합소로 만들어 버렸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재판국이 갑자기 요직으로 알려지고 줄을 대려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선관위와 재판국원은 총회현장에서 직선제로 선출하기로 결의했지만, 임시 방편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흔들리는 리더십, 더 방치할 수 없다

리더십 부재는 총회를 혼란케 만드는 첫째 요소다. 진일보한 정책을 제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총회 주변에 비선실세만 양산해 낸다. 교단을 대표하는 연합운동에 참가해서도 늘 뒷전에 밀릴 수 밖에 없다. 이는 제비뽑기의 적잖은 폐해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제102회 총회에서 제비뽑기와 직선제의 혼합형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직접선거제도로 환원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식물총회’가 회생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교단이 퇴보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금권의 선거풍토만 흘러간 유행가처럼 개탄하며 부를 것이 아니라 후보자와 총대들의 의식 개혁이 필요한 시점임을 깨닫고 나부터 변화돼야 한다. 직접선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총회가 금권으로 혼합형 선거제도를 실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한탄하기 이전에, 나부터 깨끗하고 정직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의식개혁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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