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순례자의 길] (4)광야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

사진1 메마른 광야에 조각목들만 여기저기 보인다. 조각목은 히브리어 ‘싯딤’을 번역한 말인데, 길쭉한 가시들이 달린 아카시아 나무다. 이 나무는 물이 없는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으며,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그런지 목질이 아주 단단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 때 이 나무가 사용되었다.

사진2 시내산에서 만난 일출 광경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광경을 보며 그 옛날 시내산에 강림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한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출 19:18)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 백성을 만나주시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흔히 광야에 비유하고 나그네 인생 여정을 광야 여정에 비유한다. 광야는 메마른 황무지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마실 물도 구하기 어렵고 먹을 양식도 없는 곳이 광야다. 광야는 살아내기 힘든 고난의 땅이며 적막하기만 한 고독의 땅이다. 광야는 버려진 땅이며 황량한 곳이다. 인생여정을 광야 여정에 비유하고 또 모두가 그 비유에 공감하는 것은 나그네 인생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광야는 빈 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곡식이나 과실이 없다. 마실 물도 없다. 의지할 사람도 없다. 쉴만한 집도 없다. 그래서 빈 들이다. 그러나 그 광야에는 낮에는 뜨거운 태양빛이 있고 밤에는 추위가 있다. 굶주린 들짐승이 있고 전갈이 있는 곳이다. 광야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있어야 할 것들은 없고, 없어야 할 것들만 있는 곳이다. 그래서 광야는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장소다.

‘광야’ 혹은 ‘황무지’, ‘빈 들’로 번역되는 말의 히브리어는 ‘미드바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의 어원이 ‘말하다’라는 뜻을 가진 ‘다바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드바르’는 말하는 도구로서의 ‘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광야(미드바르)에서 말씀하신(다바르)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출발했고, 광야와 더불어 살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단순히 빈들이 아니며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다. 광야(미드바르)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다바르) 곳이다.

너무나 살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 이어지는 곳이기에 광야(황무지, 빈 들)는 성경에서 심판의 결과를 묘사하는 말로도 등장한다. 그러나 또한 그 광야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는 곳으로, 또 구원의 말씀이 임하는 곳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우리에게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구원의 말씀을 기대할 만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도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성령께서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며 기뻐하시는 아들인데 광야로 몰아내셨다는 것이다. 거기서 40일을 계셨는데 사탄의 시험과 들짐승들의 위험 속에서 계셨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를 몸소 체험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광야에 계시는 동안 천사들이 수종들었다고 했다. 최악의 환경인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도우신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은 사역하시다가 종종 아무도 없는 광야(빈 들, 한적한 곳)로 나가셨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그 말씀을 들으셨을 것이다. 예수께 광야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광야는 험난한 곳이며 고난과 고독을 경험하는 삶의 자리다. 인생들에게 결코 편한 환경이 아니며 바람직한 삶의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광야는 다른 한 편으로 은혜의 자리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다. 그곳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도 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광야는 우리가 마냥 두려워하고 회피할 자리인 것만은 아니다. 원망과 불평만 늘어놓을 자리가 아니다. 만나 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세밀한 관심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하며 교제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곳이 광야다.

인생은 광야 여정이다.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필요적절하게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광야 길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찬송하며 그 길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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