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국원 매수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오죽했으면 101회 총회시 재판국원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자는 결의를 했겠는가? 과거에는 총회재판국원 중 타락한 국원들이 금품을 요구했다면 요즘은 송사에 휘말린 교회와 노회가 재판국원들을 매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국원들 중 일부가 금품수수 의혹에 오르내리는 자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국원들이 이를 경계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재판국장에게 2000만원, 3000만원의 돈을 건네려고 했다는 사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금권타락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총회가 제비뽑기를 하게 된 것도 금권선거의 폐단을 줄이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4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삶의 목적이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다고 하신다. 존재의 양식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는데 육체는 정신에 종속된다. 정신은 영속적이며 정신의 가장 높은 부분인 영혼은 내세의 영생을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체를 영위케하는 물질은 삶의 수단이며 부수적인 것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산상수훈과 관원과의 대화에서 나타난다. 예수님이 물질사랑을 경계하신 것은 소유에 얽매인 정신을 해방시키자는 것으로 인간의 본래적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잘 살아보세”란 국민 염원 하에 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은 경제성장이 목적이 되면서 경제지상주의가 국민들에게 신앙이 되었다. 여기에서 돈이 최상의 가치척도가 되었고, 이것이 교회 아니 목회자들 마음까지 점령하여 돈 앞에 맥을 못추는 천민자본주의의 노예들이 되어 한국교회를 이 지경까지 되게 했다. 결국 경제지상주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했다. 사회 구성원들도 부도덕에 만연되어 경제생활이란 이름 아래 부도덕을 저지르고 이런 가치관이 교회에도 그대로 자리하여 돈이면 불의도 눈감아 주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총회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총회가 제비뽑기 선거제도의 한계 속에서 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금권타락 때문이 아닌가? 이제 직선으로 선거제도를 바꾸고 금품을 요구한 총대는 총대권을 박탈하도록 하자. 선거철만 되면 총대를 모아놓고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금품을 수탈하는 행위는 우리 총회 안에서 꼭 청산되어야할 적폐이다. 깨끗한 생활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도덕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돈의 유혹을 물리쳐 타락한 천민들의 모습을 일소하여 도덕성이 대명사가 되는 명예로운 총대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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