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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성도들을 찾으신다[종교개혁 500주년 특별기획] 다시 세우는 2017 한국교회 신앙고백 2- ⑧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기쁨 … 은혜와 사랑 흠모하는 ‘경건의 비밀’ 지녀야

찬양: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영혼과 육체의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은 그들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호흡이 있는 한 여호와를 찬양토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창 1:27; 2:7; 신 6:5; 시 150:6).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그 엄위와 권능과 영광이 완전하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채우고자 하심이 아니라 우리를 그 영광에 참여케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은혜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림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까닭이다.

사람은 지(知)·정(情)·의(意)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뿐만 아니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 28). 이 권세를 천사에게는 부여하지 아니하셨다(히 1:5~6, 14).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신 것은 만물 위에 군림하여 자기 자신의 유익을 채우라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각각의 소용대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오직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른 것이었다. 사람의 존재이유가 하나님의 뜻에 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롭다. 사람이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떠나 이룰 수 없다. 인생의 열매는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었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것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선히 사용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셨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이 그 자신과 함께 만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드리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여 그 자리에서 일탈했고, 그 결과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됐다(롬 8:20). 구원은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온전한 찬양의 도구로 삼는 것이었다(시 147:10~12).

▲ 로마가톨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도 성인 숭배로 영광을 온전히 드리지 않았고, 예수님만이 가능한 중보자를 교황과 사제들도 나누어 가졌다. 그로 인해 고해성사와 연옥과 마리아 숭배 같은 폐해가 나타났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도록 하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은혜를 주셨다. 우리가 찬양하고 영광을 드려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내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의지하고, 애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소망하고, 간구하는 것이다. 로마가톨릭이 교회를 위한 신학에 몰입하고, 루터가 성도 개인을 위한 신학에 중점을 두었다면, 칼빈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신학을 개진했다. 이러한 칼빈의 유산이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를 형성했다. 칼빈신학자 펄만(Paul T. Fuhr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칼빈의 진정한 유산은 실로 구조가 아니라 방법에-사람, 그리스도, 믿음, 세계, 성경, 종교, 삶 등 모든 것들을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애쓰는 방법에 있다.”(God-Centered Religion, 23)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 가운데 우리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직시하고 그것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성도의 영화의 길이기도 하다. 끝내 하나님을 마주 볼 때까지, 그의 품속에 온전히 거할 때까지, 그와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더한 영광을 올려야 한다(요 1:18, 21; 고전 13:12; 요일 3:2).

중세 로마가톨릭은 영광을 하나님과 사람이 나누어 취했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 외에 성인(聖人)들에 대한 숭경(崇敬)을 인정했고, 교황을 위시한 사제들이 중보자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탐했다. 사람에게 공로가 돌려지니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이 사람에게 돌려지게 된 것이었다. 그 극단적인 폐해가 고해성사나 연옥설, 마리아 숭배사상 등으로 표출됐다.

종교개혁은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자는 운동이었다. 루터가 주창한 이신칭의 교리의 근저에는 우리에게는 아무 공로도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영광도 우리가 취할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 놓여있었다. 칼빈은 이를 더욱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의 의만이 구원의 유일한 공로이자 값이 되므로 오직 그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야 하며 그 은혜의 빚을 진 자로서 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본분을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칼빈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의 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칼빈주의에 관한 고전적 명저를 남긴 미터(H. Henry Meeter)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언급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상이다(The central thought of Calvinism, therefore, the great thought of God).”(The Basic Ideas of Calvinism, 3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삶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는 칼빈의 영향을 받은 독일 개혁신학자들이 작성한 문건으로서 ‘인간의 비참함’, ‘인간의 구원’, ‘감사’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혹자는 이를 Guilt(죄), Grace(은혜), Gratitude(감사) ‘3G’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가운데 제3부 감사 부분에 십계명과 주기도문에 대한 가르침이 할애되어 있음이 의미심장하다. 성도의 감사는 그저 정서적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이에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데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는 제1조에서는 “삶과 죽음에 있어서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그 답으로서 다음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 둘째, 그가 구원을 위한 모든 값을 다 치르셨으며 아버지의 뜻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신다는 사실, 셋째, 그가 성령을 부어주셔서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내가 그를 위해 자발적이고 준비된 삶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성도의 위로는 그리스도 의로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뜻을 좇아 살아감에 있다. 이러한 삶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드려야 하는 영적 예배이다(롬 12:1).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의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의 주요하고 가장 고상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전적으로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데 있다”라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조와 이와 대동소이한 소요리문답 제1조에도 잘 나타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이 그로 인하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 돌아감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롬 11:36).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의 존재, 사역, 계시를 기뻐할 뿐만 아니라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지칭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듯이, 우리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요 17:1, 5~6). 아들이 자기 자신 곧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하여 제물로 드리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이다(엡 5:2; 갈 1:4; 롬 12:1~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즐거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만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된다.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의 영광 가운데 우리가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 ●기고
문병호 교수
(총신대 신대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일과 우리의 즐거움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이러한 “경건의 비밀”을 지녀야 한다(딤전 3:16).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은혜를 깨달아 그분의 사랑을 감사하고 흠모하는 것이다. 경건은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교제하며 교통하고 아래로부터 합당한 예배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를 드리는 삶, 달리 말하면 삶이 예배인 삶을 사는 것이 경건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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