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제자가 됩시다
내가 주인인 삶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삶 전체를 살아가야

▲ 이권희 목사(서울 신일교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최근 한국교회에 범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신뢰가 추락하자,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행위 구원’으로 기우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위험천만한 신학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신학이 대두할까요? 원인은 바로 우리 각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가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 막상 가정, 일터, 이웃에서는 주님의 제자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전방향(全方向)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11절에서 바울은 “성도는 성령으로 행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행한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성령님과의 ‘동행’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같은 방향으로,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손을 잡고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행위론적이기보다 존재론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이제 나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존재론적으로 더 이상 육신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육신에 지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에 따라 삽니다. 중생한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8장 12~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합니다.

먼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로마서 7장과 8장에 나오는 ‘나’는 중생했지만 성화의 과정에서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 율법에 의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합니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중생한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이 완성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서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라고 합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아무리 지위가 높고, 공부를 많이 하고, 대단한 권력과 부를 소유했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의 반대는 어떤 사람입니까? 육신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육신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성도는 빚진 사람입니다. 그 말은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에 하나님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따라 살 의무가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으로 살아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13절이 12절을 설명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도는 육신대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만약 육신대로 살면 죽습니다. 반면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오히려 삽니다. ‘몸의 행실’에서 몸은 ‘소마’, 즉 ‘신체, 육체’입니다. 행실은 ‘프락시스’입니다. 행위입니다. 이것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저 마음의 어떤 악한 충동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사는 모든 행위가 몸의 행실입니다. ‘육신대로’는 다른 말로 ‘육신을 따라서’입니다.

헬라어 어법에서 ‘무엇 무엇 대신’ 혹은 ‘무엇 무엇을 따라서’라고 할 때, ‘대신’ 혹은 ‘따라서’ 다음에 오는 명사가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육신대로’, ‘육신을 따라서’는 육신이 기준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야망, 욕심, 욕구만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바로 몸의 행실입니다. 오직 한 가지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자기 배를 부르고 하고 자녀를 잘되게 하고 행복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것을 죽이는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동사는 몸의 행실을 완전히 소멸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의 일을 생각하고 영에 따라 걸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죽이는 것은 현재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몸의 행실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전반향(全方向)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인도하다’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삶 전체 방향이 성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전방향’(全方向)의 인도입니다. 리더십도 ‘전방향 리더십’이 영향력이 있습니다. 어느 한 방향만의 리더십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목회가 그렇습니다. 목회는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어느 특정한 부분 또는 어느 특정한 장소나 시간으로만 한정시키는 오해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삶 전체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가리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은 어떤 한 곳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곳 전체를 말합니다. 교회에서만 성령충만한 것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웃에서도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단지 예배드릴 때만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전방향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할까요? 내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함은 성령님의 통치를 전방향으로 받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은 바로 ‘전방향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주인이 되시는 삶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욕이나 감각과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성령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그러므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잘해야 본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정말 잘하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못하면 욕을 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전방향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된 영성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새로워진 참된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영성은 철저히 성령께 의존하는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전방향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성령의 인도를 친밀하고 강력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전방향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제자가 됩시다! 우리 모두 ‘전방향 그리스도인’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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