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순례자의 길] (3)나그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진1 더운 여름날에 무성했던 연잎과 꽃대가 추운 겨울을 맞아 꼬꾸라졌다. 차가운 물에 반영된 꽃대들은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다.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연잎과 꽃대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일치된다. 다양성과 통일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형들을 보면서 우리의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사진2 수많은 삼각형 철판 조각들을 붙인 설치작품의 일부를 찍었다. 그 안에 조명을 켜두어서 철판과 철판 사이로 빛이 새어나와 벽면에 그림을 그린다. 작가의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마치 사람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듯 보이는 모습을 연상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얽히고설킨 네트워크가 이러할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 중에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난 사람도 있다.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첨예한 이해관계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사람들도 있고,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들도 있다.

마틴 부버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만남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나(I)와 너(You)’라는 인격적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나(I)와 그것(It)’이라는 비인격적인 만남이다. 우리의 만남이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만남이어야 참된 삶,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부버는 “나는 너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과 세계를 이해하며 삶을 비약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했다. 칸트는 “너는 너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도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하라”고 했다. 누군가를 수단으로만 사용한다면 부버가 말한 ‘나와 그것’의 만남일 뿐이며, 그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대할 때 비로소 ‘나와 너’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채봉 시인은 몇 가지 종류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같은 얼굴이 없다. 제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독특한 삶을 산다. 생긴 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며 경험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며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스탠리 밀그램은 1960년대에 이미 “세상 사람들은 여섯 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고, 2011년 이탈리아 밀라노대학에서 페이스북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그 연결과정이 4.74 단계로 더 가까워졌음을 밝혀냈다. 오늘날에는 더욱더 소셜 네트워크(SNS)가 발달했으며 그만큼 세상이 더 좁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로 살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과 자세에 따라서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힘겹게 견디며 살아내야 할 수도 있고, 서로 사랑하며 챙겨주며 지켜주는 관계들을 힘입어 나그네 여정이 더욱 즐겁고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는 중에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찾아내고 한 방향을 바라보며 손잡고 함께 가야 한다. 그리할 때 행복이 극대화 되리라 믿는다.

우리 인생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나의 행복을 앗아가는 자가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고 하셨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말씀은 그것이 모든 성경의 내용이라는 의미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다. 성경은 나그네 된 우리의 인생여정에서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고 멋지게 사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서로 사랑하라”는 관계의 원리가 그 비결이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들은 모두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함께 손잡고 저 천성을 향해 걸어가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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