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가치 알린 ‘삼십분의 일’ 운동, 동참 이끌어

아시안게임 종교관 등 진심어린 섬김사역 ‘호응’

인천 남동구 구월동 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2층짜리 예쁜 교회당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안교회(최영섭 목사)다. 수십 층짜리 높다란 아파트들 사이에서 야트막하고 아담한 모습이 신선한 대조를 이룬다.

▲ 최영섭 목사는 삼십분의 일 운동이 “목회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고, 성도들의 노동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갱신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5층 높이로 교회당을 지을 수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았어요. 교회당 크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꼭 보고 싶은 교회를 세우자고 성도들에게 늘 말하고 있어요.”

1991년 마을안교회를 개척한 최영섭 목사는 마을안교회의 역사가 오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고 고백했다. 현재 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가 자리 잡은 땅은 1991년 당시 허허벌판이었다. 최 목사는 근처 마을에서 작은 상가교회를 시작했는데, 3년 만에 교회는 장년 출석 150명 규모로 성장했다. 부득이 교회당을 몇 번 옮겨야 했는데, 그런 가운데 교회당 부지가 2014년 아시안게임 선수촌아파트 부지로 수용되면서 종교부지를 받게 됐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아시안게임 선수촌 내에 기독교, 가톨릭, 불교, 이슬람 등 4개 종교관이 만들어졌는데, 최 목사가 기독교관 관장을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마을안교회는 임시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때였다.

“인천에 큰 교회들이 많거든요. 제가 목회하고 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큰 교회 목사님들이 관장을 맞는 게 자연스러운데 어쩐 일인지 제가 추천을 받게 됐어요.”

▲ 십분의 일 운동에는 현재 10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참석한 각국 선수와 임원은 1만9000여 명. 인천이 개항한 이래 가장 많은 외국인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였다. 자연히 스포츠선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당시는 사회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도 높아지던 때라 전도에도 지혜가 필요했다. 최 목사와 마을안교회는 여러 단체에서 온 전도팀들과 지혜를 모으고, 설득도 해가며, 반감이 없는 범위 내에서 전도에 집중했다. 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보름 동안 선수촌에 들어온 선수와 임원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신앙상담을 하고, 복음을 전했다. 아시안게임이 마쳤을 때 4개 종교관 중에서 기독교관이 선수들을 가장 잘 섬겼다고 관계자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다.

마을안교회는 아시안게임 선수촌교회로 섬긴 것을 비롯 다양한 지역 섬김으로 유명하다. 2008년에는 인천에 와서 일하는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을 위해 영어예배를 시작했고, 현 위치에 자리 잡은 후에는 지역 아동들과 주민들을 위해 교회당 안에 작은영어도서관도 개관했다.

또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기 위한 바자회와 마을 청소 등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담임목사 은퇴 시 가용한 교회 재정의 10분의 1을 사회에 환원하는 ‘십분의 일’ 운동도 계획하고 있다.

최영섭 목사는 “교회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정의 십일조를 사용한다면 주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교회가 성장하길 응원하지 않겠냐”며 “그러한 노력들이 교회가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고 앞서는 길이라 본다”고 말했다.

▲ 마을안교회는 최영섭 목사가 시작한 ‘삼십분의 일’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섬김 활동으로 지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마을안교회를 돋보이게 하는 일은 최 목사가 2008년 시작한 ‘삼십분의 일’ 운동. 목회자가 한 달에 하루 노동을 하고, 받은 품삯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운동이다.

“교회가 작을 때는 교인들과 편하게 자장면도 함께 먹었는데, 교인이 150명 정도로 늘어나니까 교인들이 자장면을 대접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이렇게 계속가면 내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타성에 젖지 않고 목회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기도원에 가는 마음으로 노동 현장을 가보자 싶었죠.”

최 목사가 처음 찾아간 곳은 박스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땀 흘려 일을 하고 점심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다. 그날 하루 최 목사는 ‘최영섭 목사’가 아니라, 초보 일꾼 ‘최영섭 씨’였다.

“하루 꼬박 일을 하는데 너무 감사하고, 은혜가 됐어요. 일당으로 5만원을 받았는데, 다음 주일 선교헌금으로 드렸죠.”

최 목사의 간증과 권면에 목회자들이 교파에 구분 없이 하나둘 동참했다. 공사판, 공장, 과수원, 비닐하우스 등에서 일을 하고 모은 돈으로 노숙자들에게 계란을 삶아주고, 호떡을 구워주었다. 재정이 남다른 만큼 반응 또한 남달랐다. 한번은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경비원들의 구두를 단체로 닦아주었는데, 모두들 “이런 목사님들이 있느냐”며 감격스러워했다.

마을안교회의 이웃 섬김 활동은 자연스레 교회 성장으로 이어졌다. 교회당 건축 2년 만에 마을안교회에는 장년 성도만 35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최 목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인정도 받고 자아실현을 하는 것도 기쁨이겠지만, 십자가에 빚진 사람으로 헌신하며 그 빚을 갚아가는 것이 더 큰 기쁨이 아니겠냐”며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빚을 갚아간다는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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