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 목사의 사진에세이 ‘순례자의 길’] (2)내가 가면 길이 된다

사진 1  넓디넓은 초원 저만치에서 말을 탄 세 사람이 가고 있는 모습이 가물가물 보인다. 망원렌즈로 당겨서 잡았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곳은 길이 아니다. 저 멀리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을 뿐이다. 초원에는 길이 따로 없다. 목적지를 바라보며 방향을 정하고 가면 그것이 곧 길이다.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있기에 길이 된다.

사진 2  여기 저기 이동하며 생활하는 몽골 유목민이 잠시 머물 곳에 ‘게르’라는 장막을 지어놓았다. 게르는 설치하고 해체하기에 아주 편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어른 3명이 있는 가족이면 불과 30분 만에 해체하고 1시간 만에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있다. 한 곳에 정착해 살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는 이런 장막집이 안성맞춤이다.

사진 3  전날 밤 초원 한가운데서 추위를 면하게 해주고 잠을 재워준 몽골 유목민 주인이 이른 아침에 말몰이를 하며 달리고 있다. 말과 함께하는 그의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승마실력은 취미나 스포츠로 하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일의 삶 속에서 다양한 상황에 숙달이 되어 그야말로 말과 기수는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맞는 말이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러나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에게는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보다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애초에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면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간혹 큰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길은 유목민이 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편안한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사실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나아갔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줄 믿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길이 없지만, 그는 길을 나섰다. 그렇다고 충동적으로 무턱대고 나선 것은 아니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아브라함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들어가는 길이었다. 길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그가 가면 길이 되었다. 애초에 가야할 길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갈 때 그것이 아브라함의 길이 되었으며 믿음의 여정이 되었다.

길이 없는 초원에서 길을 가는 사람들. 길이 없는데 어떻게 길을 갈까? 초원에서는 저 멀리 목적지를 향하여 방향을 잡고 간다. 중간 중간 바라볼 푯대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간다. 가다보면 그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들이다. 푯대를 바라보며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 나그네 된 믿음의 길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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