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꾸란의 계시는 상황과 때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갔다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가르치지만 정작 개종 위한 거짓말을 허용하며 먼저 받은 계시를 취소하기도

이슬람은 한국역사에서 생소한 종교였다. 그러나 다문화사회가 시작됨에 따라서 이슬람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 미래지도 2>에서 2050년에는 한국의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명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불교, 가톨릭에 이어서 3번째 큰 종교가 되고 기독교는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이슬람 인구가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 2015년 3월 4일 제2의 중동 붐을 발표한 이후에 한국에서 이슬람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슬람 문화는 더욱 더 깊숙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친 이슬람정책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에 교회와 각 교단은 스스로 이슬람에 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기독교인이 알아야 하는 이슬람의 교리 몇 가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1. 타하리프(Tahrif):성경은 변질되었다

이슬람에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구약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신약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변질되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변질된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되고, 변질된 내용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은 꾸란에 올바르게 정리돼 기록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을 세 가지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꾸란에는 무함마드라는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했는데, 지금 성경에는 그 내용이 없다. 둘째, 꾸란에는 예수님에게 신성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꾸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원본에는 꾸란과 일치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타락하여 그 내용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알라께서 하늘에 있는 원본인 꾸란을 무함마드를 통하여 직접 계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 주장하듯이 정말 성경은 변질되었을까? 만일 성경이 변질되었다면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있어야 한다. 꾸란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타락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구약성경은 A.D. 90년에 팔레스타인의 얌니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B.C. 400년경 말라기서가 기록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권위를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마 4:4; 막 14:27). 기독교에서도 구약 39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여 사용했다. 신약성경은 최종적으로 A.D. 397년 기독교 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즉,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까지, 성경은 이미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정경으로 확정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1947년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늦어도 A.D. 1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꾸란에는 계시에 의심이 생기면 ‘성서의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꾸란 10:94). 꾸란에는 꾸란 이전에 계시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내린 율법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와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으라 했거늘 알라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꾸란 4:136)

2. 타끼야(Taqiyya):위장 혹은 기만전략

이슬람에는 많은 교파가 존재한다. 그러나 크게 두 교파가 있는데 수니파(Sunni)와 시아파(Shiite)이다. 본래 이 교리는 시아파에서 ‘기만’을 의미하는 이함(Iham)이라는 교리인데, 수니파에서도 ‘타끼야’라는 교리로 받아들였다. 타끼야라는 아랍어는 거짓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슬람의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하여는 책망하시지 아니하나 너희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느니라 알라는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2:225) 이 내용은 이슬람 초창기에 이슬람을 반대하는 메카의 쿠라시쉬(Quraish) 부족에게 잡힌 무슬림이, 이슬람을 믿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풀려나서 무함마드에게 와서 고백했을 때 받은 계시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에 의하면 세 가지의 경우에는 거짓말이 허용된다. 첫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둘째, 평화 또는 화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셋째, 여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다.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의 저서 <이슬람 세계 변화 전략>은 이슬람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거짓말을 추가한다. 여행 중에 하는 거짓말, 즉 무함마드 당시 모든 여행은 상업적인 여행이었다. 따라서 아랍 상인들이 상업을 위하여 하는 거짓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다.

3. 나스크(Naskh):나중에 받은 계시에 의하여 먼저 받은 계시는 취소되었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A.D. 610년부터 죽기까지 23년 동안 받았다는 내용이다. 꾸란 안에 같은 주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꾸란 2장 240절에 의하면 과부는 1년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 그런데 같은 꾸란에 남편이 죽으면 4개월 10일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죽어서 과부를 남기면 과부들은 재혼하기 전에 4개월 10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이 정해진 기간을 지키면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너희는 비난하지 말 것이다”(꾸란 2:234) 그렇다면 남편이 죽고 언제 재혼이 가능한가?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스크 교리가 생겼다. 꾸란에 기록된 계시는 바뀔 수 있으며, 계시가 바뀔 때는 나중에 받은 계시가 먼저 받은 계시를 취소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받은 계시는 이슬람 신학에 의하면 취소된 구절이 된다. 이에 대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알라)가 원하였다면 우리가 너에게 계시한 것을 없앨 수 있다”(꾸란 17:86)“우리가 어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대체할 때 알라는 그가 보내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꾸란 16:101) 그래서 꾸란은 메카에서 12년 동안 받은 메카 계시, 그 이후에 메디나에서 10년 동안 받은 메디나 계시로 나뉜다. 메카에서는 무함마드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 종교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고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메디나로 오면서 바뀌게 된다. 메디나로 온 무함마드는 2년 7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칼을 들게 된다. 그리고 메카로 가는 대상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교에 강요가 없다던 ‘평화의 계시’는 ‘칼의 계시’로 바뀌었다.

“이교도를 발견하는 대로 살해하라”(꾸란 9:5),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쳐라”(꾸란 8:12) 따라서 평화에 관한 계시는 나중에 받은 칼의 계시에 의하여 취소되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카에서는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였고, 평화를 이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슬림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꾸란 29:46). 그러나 메디나에 오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바뀐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메신저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즈야를 지불할 때까지 지하드를 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알라에게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꾸란 8:39) 이 구절들에 의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다. 꾸란의 계시는 계속 바뀌어 갔다. 이슬람의 법학자들은 어떤 것이 무효가 되었고 어떤 것이 어떤 것을 대체했는지 모른다. 다만 225개 구절이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가 사탄의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시작되고 나서 무함마드가 속한 쿠라이쉬 부족과 갈등이 계속되었다. 그 이유는 쿠라이쉬 부족의 최고신(神)인 알라에게는 라트(Lat)와 웃자(Uzza)와 마나트(Manat)라는 세 명의 딸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이를 부정하였다.

그 이유는 카바신전과 그 주변에 360개의 우상 가운데 최고의 신 알라를 유일신으로 만들기 원했고, 만일 알라에게 딸이 있다면 더 이상 유일신이 아니기 때문에 알라와 세 딸들과의 관계를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쿠라이쉬 부족이 무함마드를 따르는 무슬림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추종자들 14명을 아비시니아(Abisinia, 오늘 날의 에디오피아)로 피난을 보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함마드는 쿠라이쉬 부족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민하던 중에 계시가 내려왔다. 그때 받은 계시는 다음과 같다. “너희는 라트와 웃자와 세 번째 마나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느냐? 그들은 높이 나는 학과 같아서 그들의 중재는 열납되느니라” 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자 쿠라이쉬 부족과의 화해가 성립되고 에디오피아에 있던 무슬림들이 다시 메카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메카 근처에 오자 무함마드가 받았던 그 계시가 사탄이 준 계시였기에 취소되고 이들은 다시 에디오피아로 돌아갔다. 무함마드가 사탄의 계시를 받은 것에 대하여 알라에게 책망을 듣고 새로운 계시가 내려왔다. “실로 너희는 라트와 웃자를 보았으며 세 번째 우상 마나트를 보았느뇨? 너희에게는 남자가 있고 알라에게는 여자가 있단 말이뇨? 실로 이것은 가장 공평치 못한 분배라. 실로 이것들은 너희와 너희 선조들이 고안했던 이름에 불과하며 알라께서는 그것들에게 아무런 능력도 부여하지 아니했나니 그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복음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측과 자신들의 저속한 욕망을 따를 뿐이라”(꾸란 53:19~23)

▲ 유해석 선교사
(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이 내용을 가지고 인도계 영국 작가였던 살만 루시디(Salman Rushidy)가 1988년 <악마의 시>(Satanic Verses)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의 내용이 이슬람을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란의 호메이니는 “누구든지 그를 살해하는 자에게는 150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전 세계 무슬림들에게 파트와(Fatwa, 알라의 이름으로 내리는 명령)을 선포하였다. 그로 인하여 살만 루시디는 30년 가까이 살해의 위협 속에 지내게 되었다. 또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뀌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리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의 계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갔다.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변하지 않으신 반석이요 진리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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