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목:영혼의 숲, 78x110cm, acrylic on paper, 2015■방효성 작가는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했다. 1989년 일본 동경, 1994년 미국 뉴욕 등 전 세계적으로 다수의 초청을 받아 퍼포먼스를 진행한 바 있다. 현재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부회장이자 아트미션 고문이다.

방효성은 다매체를 통해 천지 창조 이전 혼돈과 공허, 흑암의 세계에서 참 빛과 질서의 세계로 나아오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 구원의 메시지를 화면 안에 담아내는 작가다.

화면은 나뭇가지와 새싹, 종이계단 콜라쥬, 그리고 끼적거린 흔적, 지운 흔적 등이 나타나는데 흔히 작품에서 관찰되는 부재(副材)와는 사뭇 다른 구성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이한 소재들의 조합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며 균형감각과 일관된 작업을 보여준다. 미술의 3대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의 최소한의 유사 기호만으로 조형성은 물론이고 영성까지 폭 넓게 짚어가는 작품 세계 자체에 궁금증이 생긴다.

다매체 작품은 회화에서조차 여러 실험적 장치를 첨가하여 화면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예술이란 미디어를 능동적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시대 미디어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매체를 활용한 예술이 발달하고 있는 추세다. 근래 눈에 띄는 현상은 여러 장르를 통합한 총체적 예술의 시도다. 이 작품도 회화 작업에 삽화적 수법과 꼴라쥬 기법까지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장치들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화면에 그려 넣는 행위를 한다면, 방효성 작가는 역설적으로 ‘그리기와 지우기’의 상반 된 작업을 병행하는 특징을 지닌다.

작가는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을 근거로 우리 삶의 방식이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리기와 지우기를 통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표현한다. 지워짐과 동시에 부유하는 흔적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확장 해석 할 수 있는데, 부활의 확신으로 죽음을 저항하는 ‘지움’이다. 크리스천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 진리에 대한 강한 의지적 표현으로 죽음을 부정하는 ‘지움’의 행위에서 시각적 공감대 효과를 크게 부각했다. 대부분의 작가는 지운 흔적을 남기는 것조차 꺼리는데 도리어 생성과 소멸을 설정하여 시공간적인 교감을 이끌어 낸 기질이 부럽기까지 하다. 또한 ‘그리다’ ‘지우다’의 극히 일상적 행위를 통해서도 복음 전체를 설명하는 치밀성과 감성에 찬사를 보낸다.
작업 과정은 캔버스 위에 종이를 사용하여 화면을 석고가루 등으로 간단한 밑작업을 하고, 새싹 등의 단순 기호는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고, 먹물의 농담으로 기호나 지운 흔적의 반복적 묘사를 시도했다. 고형물감을 사용하여 알 수 없는 비밀스런 기호를 끼적거리는가하면 기억의 숫자를 써 넣는 수법도 사용했다. 종이로 만든 계단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절제된 색채와 단순기호의 반복으로 시선을 집중 시키는 묘한 매력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화면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한다면 일곱 포기의 싹을 틔운 대지는 완전한 죽음과 완전한 새 생명을 암시하며 부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포한다. 지워진 공간 옆에 있는 원통형 사람은 죽음이 빗겨간 부활하신 예수님 혹은 작가나 감상자로 보인다. 그 머리 위의 작은 새싹은 계속하여 성취될 일에 대한 작가적 위트 있는 예표이다.

화면 정중앙의 계단 꼴라쥬는 작품에 흥미와 영성을 밀도 있게 표출한 매개체이다. 대체로 종교성을 띈 작품에서 계단은 본향에 대한 본능적 갈급함을 암시한다. 이 세상 집에서의 고단한 삶이 끝나면 우리는 본향으로 한순간에 공간 이동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추측인가? 각자에게 주어진 종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소소한 일상에도 기뻐하고, 매일 깨알 같은 감사를 드리고, 순간순간 버릇처럼 기도하는’ 결단을 <영혼의 숲> 작품을 감상하며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양화가, 여류화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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