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윤리학회·서울생명윤리포럼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 긴급 집담회

정확성 높인 ‘유전자 편집 기술’ 인간배아에도 적용 ‘우려’ … “일관된 규제 규준 시급”

“인간 배아를 유전자 편집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합당한 행위인가?”

최근 한국과 미국 연구진이 소위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법으로 인간 배아에서 심장 돌연사를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데 성공하면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에 대한 찬반 논란이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부터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맡으며 황우석 박사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에 공동저자 이름을 올렸다가 논문 조작 사실이 밝혀져 불명예 퇴진했던 박기영 교수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되었다가 철회되면서 과학계 반발 또한 높아지고 있다.

한국생명윤리학회(회장:구영모)와 서울생명윤리포럼이 8월 4일 서울아산병원 교육연구관 세미나실에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에 대한 긴급 집담회’를 개최했다.

▲ 2017년 7월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성공한, 배아 발달 과정에서 세포가 분열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모자이크 교잡을 피하기 위해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자마자 형성된 단세포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 편집 과정. 이 성공으로 인해 인간 배아 유전자 조작에 대한 논쟁이 새롭게 불붙었다.

먼저 한국생명윤리학회장 구영모 교수(울산대 의대)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윤리적 함의가 무엇인지 소개했다. 구 교수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숫자의 유전자가 이중나선의 모양을 갖고 있는데, 그 긴 띠 모양에서 일부만을 잘라내는 역할을 하는 효소 ‘카스나인’을 소위 유전자 가위라고 하며 이 기술을 제3세대 크리스퍼라고 부른다”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크리스퍼는 1세대, 2세대와 달리 대부분의 실험실에서 표적분자를 디자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며, 여러 개의 표적 부위에서 동시적 편집이 가능한 기술적 장점을 가지고 지금까지 시궁쥐 돼지 양 소 유인원 등 여러 유전적 변형동물을 생산해왔다. 현재 쟁점은 이 크리스퍼 기술의 정확성이 진일보하면서 인간 배아에도 적용됐다는 점이다. 2015년 중국에서 3건의 유전자 가위기술 적용 보고 당시 모자이크 현상과 표적이탈 효과 등 기술적 한계가 지적된 반면, 최근 한미 공동연구팀은 그런 한계가 없이 인간 수정란에서 심장 돌연사 유발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확하게 잘라내는 실험에 성공했기에 주목받았다.

그러나 구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은 잘라내는 기술이기 때문에 과거 유전자 변형 및 조작 등 유전자를 섞는 기술보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과거보다 덜 하지만, 여전히 안전성과 윤리성 등 장기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기술을 둘러싼 윤리 이슈로 △유전질환 예방 △맞춤형 보조생식술 △유전적 증강 △배아의 사용 △대리동의 △인간유전자 풀의 변화 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방욱 교수(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 강릉원주대 생물학과)는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의 국제적 논의 및 국내외 규제 현황에 대해 강연했다. 전 교수는 “지난 2015년 1월 나파벨리에서 유전자 편집의 ‘아실로마회의’ 모임이 열린 이후 과학계는 민감한 연구의 자기 규제에 힘써 왔다”며 유전자 편집의 경우도 연구개발자들이 모라토리엄을 요구하고 2015년 말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해 자기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제적으로 일관된 지침이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자국의 규제와 국제적 규준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는 현행 생명윤리법상(47조 3항) 배아, 난자, 정자 및 태아에 대한 유전자 치료가 금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배아에 대한 연구는 보존기간이 지난 잔여배아를 원시선에 나타나기 전까지 대통령령(생명윤리법 시행령 12조)이 정하는 20여개 희귀 및 난치병 등 치료를 위한 경우 엄격한 감독 하에 허용하고 있다.

전 교수는 “국내에서 생명윤리법으로 금지된 연구를 규제가 느슨한 외국에서 수행한 다음 국내법의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 과학자의 태도로서 아쉬운 점이 많다”고 비판하며 “규제 개정 여부는 특정 실험의 성공에 의해서가 아니라 폭넓은 이해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한국생명윤리학회와 서울생명윤리포럼은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 연구와 정책은 책임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두 단체는 “인간 배아가 지닌 독특한 도덕적 지위를 고려할 때, 인간 배아는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실험이 가능하여야 한다. 유전자 편집기술은 의학적 가능성도 있지만 동시에 연구비 배분의 적절성, 윤리적 문제, 위험, 기업의 이해관계 등 매우 다양한 쟁점을 복합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범용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할 때는 몇몇 학자나 위원회를 통한 논의를 넘어서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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