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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경술년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1910년 8월, 519년간 이어져오던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일본은 자국 영토를 편입한 한반도를 조선이라 불렀다. 2000만 동포들은 나라 잃은 슬픔을 분노와 저항으로 표출했다. 1910년 9월 7일 전남 광양 출신의 매천 황현은 절명시를 쓰고 자결했다. 1888년 생원시 복시에 장원급제한 황현은 당대의 시인으로 문장가로 역사가로 나라 잃은 슬픔을 죽음으로서 항거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각국 공사관에 독립을 호소했는가 하면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초들의 저항에 식민지 지배자들은 조선총독 음모사건을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저항의지를 꺾으려 하였다. 국제사회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지배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던 날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두 시간 이상 버티다 병합조약에 ‘대한국새’를 찍고 그 위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서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천황은 한국병합을 공포하는 조서에 국새를 찍고 메이지 천황의 본명 ‘무쓰히토’라고 서명했지만 순종황제가 같은 날 반포한 조서에는 국새가 찍히지 않았고 순종의 본명인 ‘이척’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병합 조약서에는 행정적 결재에만 사용되는 ‘칙명지보’라는 어새가 날인돼 있을 뿐이었다. 이는 일본이 한국병합조약체결을 형식과 절차를 무시한 채 강제로 진행하였음을 말해준다.

본래 식민지란 한민족 또는 국민의 일부가 새로운 땅에 이주해서 만든 지역을 의미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이후 서구 열강은 원료를 쉽게 구하고 상품을 팔기 위한 시장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이들의 침탈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아시아, 아프리카와 태평양 연안의 섬들이었다. 이때부터 식민지는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 경제적 목적으로 군대를 동원해 지배하는 영토를 의미했다.

하지만 일본 같이 고대부터 교류가 있던 이웃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경우는 참으로 드문 경우였다.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한 지방이면서도 일본헌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지역이 되어 제국주의 일본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의무만 강요되는 식민의 아픔 속에 착취되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익이 보장되는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계획 아래 1917년에는 면 단위에 공공 사무처리 권한을 부여해 모든 일상을 감시하고 지역 자치권을 없애면서 식민지 지배체제 구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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