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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참회가 있어야 한다

기독교 선교 132년이 되는 지금 한국교회는 대국민 신뢰도에서 낙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날 일제 치하를 지나며 암울했던 근대 한국역사에서 기독교는 그 성장 동력의 주체였다. 이러한 한국교회가 1990년대를 지나며 이 사회를 향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지난 20년간 추락한 비행기의 모습이 된 채 만신창이가 되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기윤실) 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 신뢰도 개선을 위한 최우선 책으로 불투명한 재정사용이 26.1%로 나타났고, 기독교 목사들의 삶이 17.2%로 나타났다. 특히 기독교목사들의 윤리, 도덕성이 44.4%로 최고의 수치였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코람데오, 즉 신전의식과 개인적인 삶이 아닌가?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황금 앞에 눈이 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공영언론을 도배하는 낯 뜨거운 소식들의 다수는 돈 문제이다.

도대체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디 갔단 말인가? 지존자의 은총을 따라간 아브라함에게 전능자 되시는 하나님은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며 그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받은 축복을 간증하고 있지 아니한가? 참으로 조국이 을사늑약으로 누란의 위기일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선생의 글이 다시 되뇌어 짐은 작금의 한국교회가 무너져가던 말기 조선의 모습 때문 아닌가.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의 뜻은 “이날 목 놓아 우노라”이다.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000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비분강개했던 선생의 심정이 되고 싶은 것은 오늘 이 지경이 된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기 때문 아닌가?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개인으로서만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끊임없이 개혁되고 새롭게 갱신되어지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의 구원. 이를 위한 긴장 구조가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다수의 기독교 목회자들은 믿음의 실천을 위한 전투적 자세를 잃어 버렸다. 지속적인 자기 쇄신을 포기한 자는 이미 목회자의 자리를 떠난 탈선한 교역자임을 잊지 말자. 심심찮게 들려오는 금품수수 소리, 사회 일각에서도 김영란법이 실시되고 있는데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목회자들이 패역의 길을 가서야 되겠는가? 작금의 한국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우는 참회가 있어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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