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홍 목사(서문교회‧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사회학자 김동춘(경북 영주) 성공회대 교수가 “서구의 기독교 신자들이 기독교 사회윤리에 대한 엄격한 원칙주의에 서있다면,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 신자들은 한국에서 주류 세력이 된 교회 세력에 편승하려는 세속적 동기와 반공주의, 물량주의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거나 막말 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어 별로 충격도 받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동아일보에서 정년퇴임한 대학 선배가 있다. 수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교회를 출석했다. 그런 그가 요즘은 긴 휴가 중이란다. 이유는 지난 세월호 사건 때 목사가 단 한 번도 세월호에 대한 기도는커녕 설교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남전도회에서 그 말을 했는데, “교회에서 그런 얘기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당장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집단이 있느냐며 냉소적 비판을 폭포수처럼 쏟아 부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공감의 영성을 상실한 교회의 현주소이다.
어제는 한 성도가 SNS에 돌아다니는 내 글을 보고 보수교단 목회자가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것 같다면서 면담을 요청했다. 제법 규모 있는 교회에 출석했던 ‘가나안(안나가) 교인’이었다. 그는 화려한 프로그램 목회를 추구하면서 세월호에 대해서는 애써 무관심한 목회자들을 안타까워했다. 보수로 위장한 친일 인사들이 건국절을 주장하거나 국정 교과서를 찬성한 일도 걱정했다.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역사의식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경직 목사는 박정희를 모세로, 정진경 목사는 전두환을 여호수아로, 김진홍 목사는 이명박을 아모스로 치켜세웠다. 이런 추태로 인해 한국교회는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우리 이웃 교회에서는 목사가 수년전에 당시 대통령의 실정을 가볍게 비판하자 장로들이 일어났다. ‘어디 감히 우리 장로 대통령님을 비난하느냐’고 하면서 결국 사임시켰다. 이것이 한국교회 역사의식의 현주소이다.
지난번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전봉준 기념 사업회 일로 박원순 시장을 만났다. 대화 말미에 내가 목사인 것을 알고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하는 아들 이야기, 오늘의 한국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교회가 자기를 좌파로 몰아 공격하다가 이제는 동성애 옹호론자로 공격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정당한 법절차에 의해 그들의 집회를 허락할 뿐이지 동성애 추종자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함께 자리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과 언론사 직원 모두 한국교회의 신중하지 못한 인신공격형 집단행동을 비난했다. 나의 변명은 순진한 한국교회가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효도 교과서’라고 비난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교과서 파동에도 들러리를 섰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학자나 상식을 존중하는 시민 누구도 찬성하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를 찬성하는 것도 모자라 ‘1948년 건국절’ 주장에 까지 적극적이었다. 순복음교단의 최성규 목사는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건국절을 주장하면서 최근까지도 건국절 전도사처럼 열심이었다. 그 일로 ‘국민통합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얻었지만 한국교회를 크게 망신시킨 추한 감투였다.
건국절 문제는 독립 운동가를 무시하고 친일파를 개국공신으로 만드는 반역사적 행위다. 이런 민족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작태에 왜 목회자가 이용당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의식을 상실한 한국교회를 향해 시인 김용택은 말했다. “입만 열면 종북타령이요 흑백논리 혹은 냉전논리를 꺼내는 이유는 비판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수를 팔아 기업이 된 대형교회, 그들에게 영혼을 판 곡학아세한 지식인들”이라고.
광복절을 앞두고 역사의식은 물론 영성마저 상실한 교회가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