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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사회에 파고든 이슬람 ⑬ 한국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방치된 ‘가나안 성도’는 이슬람 개종에 노출되어 있다
‘2020년까지 대한민국 이슬람화’ 선언, 공격적 포교활동 벌여 …
쇠락한 유럽교회 교훈 통해 철저히 대비해야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한 중학생에게서 다음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저는 15살의 학생입니다. 저는 엄마와 함께 교회를 다녔어요. 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이슬람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개종 후 모스크에 다니는데, 이슬람에서는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꾸란 10장 94절에 보면 ‘만일 꾸란의 계시에 의문이 생기면 성경을 읽거나 성경을 읽은 사람에게 물어 봐라 진리는 이미 거기 다 나와 있다’고 해서 의문이 생겼어요. 그러던 중에 유튜브를 통하여 유 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알았습니다. 저는 선교사님의 강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글을 받은 다음 날 이 군이 살고 있는 P도시로 달려갔다. 이 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세의 앳된 청소년이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터넷으로 찾다가 이슬람의 알라가 일위일체(一位一體) 하나님이라 생각하고 이슬람 사원과 연락을 하여 이슬람 사원에서 많은 이슬람 책들을 보내와서 그 책으로 공부한 후에 이슬람으로 개종했었다. 그 다음은 문자의 내용과 같이 ‘유튜브’에 있는 필자의 강의를 듣고는 다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이다. 이 군은 그 자리에서 이슬람을 믿으면서 공부했던 12종류의 이슬람 서적 19권을 필자에게 주었다. 이 군과의 만남을 통해서 필자는 한국 청소년들이 이슬람에 대해 쉽게 노출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1. 한국 이슬람의 역사

한국에 이슬람이 처음 들어온 것은 통일신라시대였다. 신라시대 국제무역항이었던 개운포(울산)를 통하여 교역이 이루어졌고 무슬림들이 신라에 들어왔다. 또한 신라의 대덕고승인 혜초는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였던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방문하여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 이슬람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고려시대에는 수도였던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수백 명의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이슬람과의 교류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였던 무슬림들은 주로 조정과 상류층 사회와 교류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이들은 소수였으며 조정과 주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슬람이 대중 속에 정착되지 못했고 결국 자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지배층 중심의 성격은 민중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급변하는 대내외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세종 이후 4세기가 지난 후에 1915~1920년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과 볼세비키혁명을 계기로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한국에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1920~1940년 중반까지 200~250여 명의 투르크인들이 한반도 전역으로 이주하여 이슬람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은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 이슬람 마을(Mahall-i Islamiyeg)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서울 시내의 중심가에는 이슬람 학교(Mekteb-i Islam)를 통하여 무슬림 자녀들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투르크 무슬림들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계인들 및 고위 군부들과 밀접한 협력 관계를 추구하면서 무역과 상업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를 축적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일본의 패망 이후로 불안한 국내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투르크 무슬림들은 1940~1950년간에 캐나다, 미국, 호주, 터키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에 일제 치하를 겪은 우리 민족은 나라의 아픔을 끌어안고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만을 얻고자 하였던 투르크인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투르크 무슬림들은 한국에 이슬람을 적극적으로 포교하지 못했고, 한국의 공동체 형성에 특별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2. 한국인 이슬람의 증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슬람 인구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소속으로 터키의 군인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참전한 병력의 규모는 미국 다음으로 여단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였다. 당시 압둘가푸르(Adulgafur)라는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 이맘(Imam)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교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1세대 한국인 무슬림들로 형성되었다. 이후 1955년 9월 15일 ‘한국이슬람협회’를 결성함으로서 적극적인 이슬람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56년 주베이르 코치(Zubeyr Koch)가 2대 이맘으로 부임하면서 입교자는 ‘208명’에 이르게 되었다. 1970년 한국인 이슬람 인구는 3700명이었으나 1976년 한국 정부는 용산구 한남동의 1500평의 땅을 이슬람 중앙성원 건립용 부지로 기증하여서 이슬람사원이 완성되자 이슬람 인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여 1만 5000명이 되었다. 한국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하면서 1980년 2만 200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1990년 이후에 노동력의 부족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인 이슬람 인구도 늘어났다. 2005년에는 한국인 이슬람 인구가 약 4만 명이 되었을 때, 한국 이슬람 전파 50주년 기념대회가 있었던 서울의 롯데호텔에서, 2020년까지 대한민국을 이슬람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한국이슬람중앙회(Korea Muslim Federation)가 발행한 ‘한국 이슬람 50년 자료집’(Da’wah Plans in the Future, 2005년 11월)에 보면, 이슬람이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한 6가지 전략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을 보면 1)이슬람 사원 건립 2)국제 이슬람 학교 설립 3)이슬람 문화센터 설립 4)꾸란(quran)의 새로운 번역 추진 5)이슬람 대학 건립 6)이슬람 관련 서적 출판 등이라고 명시돼 있다. 또 바로 다음 장에 무슬림들과 한국인들의 결혼을 적극 장려하고,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이른바 ‘생물학적 이슬람화’를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글이 실려 있다. 즉, 6가지 선교 전략과 ‘생물학적 이슬람화’를 합하여 ‘7대 전략’이라는 글을 발표한 것이다. 이처럼 이슬람은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하여 다각적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 결과 2009년에는 한국인 무슬림은 7만 1000명으로 성장했다.

3.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유

2002년 이탈리아에는 7000명에서 1만 명 정도의 이탈리아인 무슬림이 있었다. 2012년 네덜란드에서는 1만 2000명의 네덜란드인 무슬림이 있었다. 영국은 매년 약 1만 명씩, 프랑스는 매년 약 4000명씩 현지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과 미국에서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무슬림들의 이슬람에 대한 열성과 그들의 실천적인 신앙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종교적 규율이 현대 상황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지 않고, 그 계율들을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신앙 자세가 서구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우정을 가지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이슬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 가정은 자녀들이 타락한 유럽 문화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꾸란을 암송시킨다.

둘째, 이슬람은 교리가 단순해서 이해하기가 쉽다. 예를 들어 기독교 교리(성육신, 그리스도의 속죄, 구속, 삼위일체, 원죄 등)처럼 어려운 내용이 없으며,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합리적으로 나타난다. 이슬람을 믿는 것이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 다음에 나타난 종교로서, 3대 종교 중에 정점을 이루고 있다.

셋째, 공동체에 속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유럽의 많은 가정들이 점차 전통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한 부모가정이 200만 가정이나 된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한 부모 가정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형제애를, 무슬림 공동체에서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서로의 문화를 확인하고 결속시킨다. 기도 시간이나 순례 기간 동안에 광범위한 영역의 사람들이 연합과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표면적으로나마 보이는 것이다. 슬프게도 이런 형제애가 서구 교회에서는 막혀 있다.

넷째, 영국 웨일즈대학 이슬람연구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영국의 미혼 여성들이 쉽게 이슬람에 이끌리고 있다. 여성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고 있는 이슬람으로 자진해서 개종하는 이유는 무슬림 남자와의 결혼 때문이며, 이슬람문화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 여성 개종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심각하다. 그 이유는 자녀교육의 요람이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들의 종교문제 만큼은 어머니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흑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흑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유는 한 세기 전에 백인들에 의하여 흑인 노예로서 억압을 당했던 것에 대한 원한이 오늘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흑인들이 서구에 도착했을 때, 교회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취하였다. 또한 노예제도에 대한 반성 없는 교회의 태도는 흑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으며 흑인들에 대한 이슬람의 관심과 흑인들의 종교가 원래 이슬람교였다는 무슬림들의 주장이 흑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 왔다.

한국에는 최근에 ‘가나안 성도’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 가 된다. 예수는 믿는데 교회는 안 나가는 기독교인을 의미한다. 지난 해 말, 한 연구소에 의하면 가나안 성도들이 약 170만 명이 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가 첫째, 같은 기독교인의 이기적인 모습에 상처를 받아서(40%) 둘째, 목회자에 대한 실망감(32%) 셋째, 헌금에 대한 부담감(17%)이다. 그런데 이슬람에는 헌금이 없다. 수입의 2.5%를 구제금에 사용한다고 하지만 이 구제금은 대부분 개인이 선행을 베푸는데 직접 사용한다. 이슬람은 성직자가 없다. 또한 무슬림들은 아무데서나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면 된다. 따라서 교인들끼리 부딪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에서는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들이 얼마든지 이슬람으로 개종할 가능성이 있다.

이슬람 전문가 조엘 리차드슨(Joel Richardson)에 의하면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들 중 80% 이상은 교회에 출석하던 기독교인들이었다. 영어로 그들을 ‘Back Sliding Christian’이라고 부른다. 한때 교회에 출석했지만 더 이상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한국말로 의역하면 가나안 성도들이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무슬림들은 이슬람 가정에서 자란 무슬림보다 더 과격하게 행동하고, 기독교를 잘 안다는 생각에 기독교에 대하여 더욱 비판의 날을 세우게 된다.

2013년 5월에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부대로 들어가는 영국 군인이 거리에서 참수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영국 군인 릭비(Lee Rigby)를 죽였던 마이클 아데볼라요(Michael Adebolajo)는 2001년에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인물이며, 또한 마이클 아데바웨일(Michael Adebowale)도 2005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은 나이지리아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교회에 나가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이에 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위원장:권순직 목사)에서는 이슬람대책아카데미를 8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새한교회(임익곤목사)에서 개최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이 참여하여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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