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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사회에 파고든 이슬람 ⑭ 딤미, 이슬람 치하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차별적 계약관계 강조, 이슬람 개종과 복종 강요해
이슬람 치하서 개인적 보호 명분 삼아 인두세 납부와 사회적 활동 제한 … 치욕 이기지 못해 강제 개종 잇따라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신흥종교연구센터(CESNUR)에 의하면 전 세계 분쟁과 종교갈등으로 인하여 2016년 9만명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 6분마다 기독교인 한 명이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 이후 약 70만명의 기독교인이 난민이 되었고, 기독교인 여성과 아동들이 납치당했다. 2015년에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리비아 트리폴리 인근 해변에서 이집트 콥트 기독교인 21명을 참수하였다. 파키스탄에서는 기독교인 청소부를 더럽다고 무슬림 의사가 치료를 거부하여 죽음을 당했다. 나이지리아 테러단체인 보코하람의 지도자 아부바카르 쉐카우는 “나이지리아에서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동등하게 살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보코하람은 2009년부터 나이지리아 동북부를 거점으로 삼고 기독교인 등 2만명 이상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코하람은 2015년 한 해 6644명을 살해했다. 오픈도어의 발표에 의하면 기독교인을 가장 극심하게 박해하는 상위 50개국 가운데 40개국은 이슬람 국가들이다. 이슬람 치하에서 왜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는 것일까?

1. 기독교와 유대인에 대한 꾸란의 견해

꾸란에서 성서의 백성(People of the Book)이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을 말한다. 성서의 백성들에 대한 꾸란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람의 신앙고백에서 이슬람을 믿는 길은 노여움을 받은 유대인이나 방황하는 기독교인이 가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꾸란 1:7)을 가는 것이다. 둘째, 유대교와 기독교를 믿는 백성들은 옳은 길을 벗어난 자들이다(꾸란 5:77). 셋째,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은 지옥에 간다(꾸란 98:6). 넷째, 이슬람에게 주어진 사명은 유대교나 기독교를 포함하여 다른 종교를 정복하는 것이다(꾸란 48:28). 다섯째,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이 패배할 때까지 싸워야 하며 그들은 무슬림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한다(꾸란 9:29). 여섯째, 결국 예수가 재림하여 십자가를 부수고 모든 기독교인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유대인은 더욱 가혹하다. 초창기에 유대인들이 무함마드에게 호의적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무함마드를 받아들이지 않자 메디나에게 가혹한 계시가 추가되었다. 유대인은 이슬람의 가장 큰 적이다(꾸란 5:82), 유대인은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까지 무슬림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꾸란 2:120), 유대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대지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꾸란 5:64), 유대인은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고 말하고 알라의 아들을 에즈라라고 부른다(꾸란 9:30), 유대인은 알라가 약한 손을 가졌다고 비난했기 때문에 알라에게 저주를 받았다(꾸란 5:64), 유대인은 현재의 삶을 사랑하기에 영원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꾸란 2:96)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

2. 딤미의 뜻과 규정

역사적으로 이슬람 치하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을 딤미(Dhimmi)라고 불렀다. 아랍어로 딤미(Dhimmi)는 ‘보호받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보호받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가리킨다. 딤미는 ‘협약’(Dhimma)에 의하여 결정되었고 양자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계약적인 것이다. 이는 우마르 조약과 연관되어 있다. 우마르 조약은 우마이야 왕조(Umayya王朝, 661~750) 때 즉 무함마드가 죽은 후에 2대 후계자(칼리프)인 우마르(Umar Ibn Khatib)가 시리아를 정복한 후에 A.D. 638년 시리아 기독교인들과 체결한 조약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약은 대부분의 진술이 “우리는 ~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슬람에 정복된 기독교인들이 썼다고 하지만, 사실은 꾸란을 근거로 해서 이슬람 지도자들이 만든 세금 즉 인두세(人頭稅, Jizyah) 징수 조약이다. 인두세는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인에게 원래의 신앙을 허용하는 대신, 강제로 징수한 세금이며 아랍어로 ‘지즈야’라고 부른다. 성서의 백성들은 조약이 제시하는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슬람 치하에서 개인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의 지하드 법에 의하면 딤미 협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개종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죽음이다. 이슬람 치하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인두세(Jizya, 지즈야)뿐 아니라 토지세(Kharaj, 카라즈)를 이슬람 정권에 납부해야 했다. 이에 대한 법률의 제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①비무슬림 남성은 인두세와 함께 토지세를 지불해야 한다.
②비무슬림들은 병역에 종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③새로운 교회나 회당을 건축할 수 없다. 이미 존재하는 교회나 회당은 허락을 받은 이후에 개조하거나 보수할 수 있다.
④십자가를 걸 수 없고 종교적인 행렬을 할 수 없다.
⑤기독교인의 집은 이웃 무슬림의 집보다 더 크게 지을 수 없다.
⑥복장은 무슬림들이 입는 복장과 달라야 한다.
⑦비무슬림들은 말을 탈 수 없다. 노새나 당나귀는 탈 수 있다. 그리고 무슬림이 걷고 있다면 그들도 걸어야 한다.
⑧비무슬림들은 무슬림들에 대하여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만약에 자리에 앉아 있다면 무슬림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⑨법정에서 무슬림을 향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증언은 아무 효력이 없다.

딤미 협정은 꾸란에 기록된 두 가지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이슬람은 어떤 종교보다 우월하다(꾸란 3:11)는 것과 둘째,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정복되어야 하고, 굴욕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며, 무슬림들은 내지 않아도 되는 인두세 납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꾸란 9: 29). 협약의 근간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우월성과 이슬람국가의 지배를 받아들임으로써 종속적인 지위를 인정하고 그 표시로 사회적 제한과 인두세의 부과를 감내하는 대신,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과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 그리고 신앙의 자유와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자주권 행사 등을 보장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딤미들은 노예보다 많은 권리를 가지지만 무슬림에 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의 부담과 무장의 원칙적 금지라는 면에서 열등한 지위에 있었던 셈이다. 기독교인들이 제출하는 증거는 이슬람 법정에서 효용이 없었고, 피해보상 시에도 무슬림보다 적은 액수를 받았다. 그들은 무슬림 여인들과 결혼할 수 없었고, 의복이나 주거 혹은 이주 등에서도 일정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괴팅겐대학교 국제학 교수인 바쌈 티비(Bassam Tibi)는 “이슬람의 사명은 모든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항복할 때까지 전쟁의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슬람은 선교적인 종교(다와)이다. 무슬림은 전 세계에 이슬람을 전파할 의무가 있다. 꾸란에는 무슬림들을 향하여 ‘우리는 너희를 모든 인류에게 보냈다’(꾸란 34:28)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 비무슬림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거나 복종한다면 선교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만일 개종하거나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3. 기독교인이 내야 할 인두세의 가치

그렇다면 인두세는 얼마 정도 되었을까? 아서 트리톤(Arthur Tritton)은 A.D. 700년에서 720년의 초기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기독교인들이 내야하는 인두세에 대한 기록을 분석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인두세는 2.5디나르에서 4디나르까지 다양했는데 실제로 지불된 금액은 2.5디나르였다. 이 당시에 양 한 마리에 0.5디나르였고, 목수, 조선공, 선원을 고용하는 비용이 일 년에 8~24디나르 사이였다. 따라서 노동자의 경우에 2.5디나르는 평균 1개월에서 3개월의 임금에 해당한다. 무슬림들이 연간 수입의 2.5%(40분의 1)를 즉 일주일 정도의 임금을 내는데 비하여 기독교인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토지세까지 내야 했다.

4. 인두세를 내는 방법

인두세를 낼 때, 전형적인 의식(儀式)이 있다. 꾸란 9장 29절에 의하여 성서의 백성들은 “저주스러움을 느껴야” 하기 때문에 의식으로 발전되었다. 페르시아인 하나피 법학자 나사피(Nasafi, 1310년 사망)에 의하면 “딤미는 반드시 걸어야 하고 말을 타서는 안된다. 그는 서서 인두세를 지불하고 받는 사람은 반드시 앉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딤미를 격렬하게 흔들어야 하며 그는 딤미의 목줄을 잡고 끌고 가면서 ‘너 딤미는 인두세를 내야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뒷목을 강하게 치는 것으로 이어졌다.” 비슷한 내용이 페르시아인 샤피 주석가 알 라지(al-Razi, 1210년 사망)보고서에도 발견된다. “딤미는 직접 인두세를 가지고 와야 하고 말을 타지 않고 걸어와야 한다. 그는 반드시 선 상태에서 세금을 건너 주어야 하며 그때 세금 수령자는 앉아 있어야 한다. 그는 수염이 당겨져 앞으로 가야하고 ‘인두세를 내라’고 말한다. 그 후에 반드시 뒷목을 쳤다. 이것의 인두세를 낼 때, 치욕과 수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5. 이슬람에 의한 학살 및 강제개종의 사례

1066년 그라나다(Granada)에서 무슬림에 의하여 유대인 3000명이 학살당했다. 1860년 오스만 터키가 공식적으로 딤미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자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500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 의하여 학살당하였다. 기독교인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백성이 아니라는 모스크의 설교에 자극을 받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 남자들을 학살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납치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수백 명의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이 사건은 다마스커스에서 사역하던 아일랜드 선교사 롭슨(S. Robson)에 의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독교인에 대한 공격은 1890년 오스만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안 기독교인에 대한 학살이었다. 수십만 명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하였다. 죽음을 피하는 수단으로 개종을 강요당하였고 많은 여인들이 무슬림 집으로 납치당했다. 무자페르(Muzafer Ferro Mehmedovic)의 연구에 의하면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알바니아 기독교인들이 인두세 내지 못하여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다 인두세를 높이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딤미제도가 처음에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에게 한정하여 납세로 신앙의 유지를 허용하였으나, 이슬람의 정복지가 페르시아로 확대되면서 조르아스터교로 확장되었고 인도를 침략하면서 힌두교로 확장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동안에 딤미법은 유럽의 강대국의 압력으로 거의 대부분 이슬람사회에서 파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슬람 치하에서는 개종강요와 학살 등이 자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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