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 구원의 확신(R. C. 스프룰, 생명의말씀사)

기독교인들은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자신감이 혹시나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나를 기만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구원의 확신에 관한 문제는 오랫동안 교회 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켜 왔다. 로마가톨릭교회는 16세기에 트렌트종교회의에서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원의 확신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일반 신자들은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구원의 확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없는 한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로마가톨릭교회는 본 것이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도 오늘 구원을 확신했다가 내일 그 확신을 잃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한때 믿음이 있었더라도 그 믿음을 버리고 구원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현재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확신만이 아니라, 사후에도 여전히 은혜의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이 가능하다.

저자는 먼저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다룬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다. 씨앗이 뿌리를 내려 성장해야만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열매의 필요성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행위는 우리가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결과이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칭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참 믿음은 항상 행위를 통해 그 실체를 입증한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고, 참 믿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이라는 것을 입증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신자들이 열매를 맺는 양은 제각기 다르지만, 참 신자는 반드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고 말씀하신 이유다.

우리는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는지 확신하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구원의 확신’을 기준으로 나누면 세상에는 모두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이 네 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1)구원받았고 그것을 아는 사람 2)구원받았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 3)구원받지 못했고 그것을 아는 사람 4)구원받지 못했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

구원받았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한다. 이들에게 구원의 확신은 이미 확고히 결정된 문제다. 물론 구원의 확신은 개인의 상태에 관한 확신을 의미하며, 그 확신의 강도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신앙생활은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결국에는 의심을 극복한다. 왜냐하면 참된 확신은 감정 이상의 차원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갖는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한 말로 선택의 확실성을 추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따라서 우리는 교만한 태도가 아니라, 진지한 태도로 우리의 소명과 선택을 확신하기 위해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한다.

■ 더 읽어볼 책

<어떻게 구원을 확신하는가?>(존 맥아더, 코리아닷컴)
<참된 구원의 확신>(윌리엄 거스리, 그책의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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