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르네상스 이후 중세는 도시들의 시대가 된다. 도시들의 인구와 경제적 규모로 인한 위상이 변방의 공국들보다 더 커지고 있었다. 무역이 급증하면서 도시의 경제력은 그 위상이 압도적으로 큰 부자들이 출현했는데 가장 부유했던 가문이 메디치가였다. 메디치가는 은행업으로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메디치가는 금화를 찍어내어 화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만큼 메디치가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중세는 나라나 도시마다 통화가 달랐다. 영주들은 화폐가 없는 농민들에게 세금으로 농산물을 받았고 당시 영주들은 혼사의 지참금이나 국왕이 요청하는 전쟁 부담금을 현물로 보낼 수 없어 도시에 내다 팔아 화폐로 바꾸었다. 그 화폐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메디치가의 화폐로 교환하여 사용했다.

중세의 또 한 가지 혁명이 출판혁명이었다. 도시의 부흥과 학교의 증가는 많은 서재를 필요로 했다. 중세 말 15세기까지 책은 필경사들의 필사나 목판활자를 이용한 인쇄에 의지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마인츠 출신의 요한 구텐베르크였다. 지금도 그의 고향 마인츠에 가면 대성당 맞은편에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세워져 그의 기념비적 출판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1456년 금속활자로 제일 먼저 찍어낸 책이 200권의 라틴어 성경이었다. 한때 많은 돈을 번 구텐베르크는 발명권을 둘러싼 소송에서 패하면서 빈곤한 여생을 보내다 영면했다. 금속활자 등장 후 100년간 인쇄된 책의 수량은 중세 천년의 전체 수량보다 더 많았다고 김동주는 그의 저서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에서 증언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독일 인쇄업자들은 고딕체를 만들었고 피렌체 인쇄업자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이탤릭체를 만들었다.

인쇄 혁명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을 밭가는 농부나 필부들도 공유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교황의 가르침이 맞는가를 인쇄된 성경을 읽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첫 단계가 되었다. 단단하게 고착되었던 중세의 철옹성은 이런 변화들에 의해서 서서히 흔들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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