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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사회에 파고든 이슬람 ⑪ 이슬람은 이단인가, 타종교인가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다양한 기독교 이단 교리가 이슬람 형성에 영향 미쳤다
무함마드, 정체 불명 이교도를 정통 기독교로 이해 …
칼빈은 ‘삼위일체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으로 규정, 비판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이슬람이 이단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견해가 있다”고 말하면 기독교인들 가운데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의아해 하거나 혹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슬람을 타종교라고만 배웠기 때문이다. 필자도 신학교 다닐 때, 이슬람을 비교종교학 시간에 조로아스터교와 함께 30분 배운 기억이 있다. 아직까지 한국의 많은 신학교에서 이슬람을 비교종교학 시간에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연구가 선행된 적이 없었으며, 한국에 이슬람 인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1. 이단은 무엇인가?

이단(heresy)의 교회사적 어원은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에서 시작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종파나 무리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행 5:17, 15:5), 고린도전서 11장 19절에서는 교회 내부에 분파나 분열을 조장하는 편당을 지적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서는 부정한 죄를 지은 자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고, 바울서신에 나타난 내용은 대부분 분파주의에 대하여 비난할 때 사용되었다. 이는 교부시대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교부가운데 최초로 이 말을 사용한 사람은 이그나티우스(Ignatius)이다. 그는 교회의 단일성을 해치는 무리를 지칭할 때 하이레시스를 사용하였다. 유스티누스(Justinus)와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er)도 마찬가지였다. 교부들이 하이레시스를 사용할 때는 초대교회에 나타난 이단들의 집단을 규명할 때 동일하게 사용하다. 그 후 교부들은 지속적으로 하이레시스를 사용하여 이단을 규명하였고, 중세기에는 교리문제 뿐 아니라 교회의 단일성을 파괴하거나 교회에 불복하는 반대자들을 배척하고 규정짓는데 통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근대 교회사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2. 이슬람을 이단으로 보았던 종교개혁자들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 1509~ 1564)은 이슬람의 이단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을 주해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을 주해하면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배교자요, 이단자”라고 하였다. 요한일서 2장 18절에 대한 주석에서 ‘적그리스도 왕국의 전령사’들로 여러 이단들 가운데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이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일신론적 이단으로 이슬람을 이해했다. 종교개혁자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는 그의 저서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무슬림들을 가리켜 ‘이단자’라고 칭하였다. 꾸란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삼위일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가톨릭의 교황이 만들어낸 면죄부처럼 이슬람이 행위를 통한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펠라기안적인(Pelagianism) 이단이라고 보았다.

3. 이슬람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기독교 이단들

이슬람이 시작될 때,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는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사비교와 토속종교였다 기독교는 아랍인들 사이에 크게 인식된 종교는 아니었다. 무함마드가 보고 들었던 기독교는 그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지 않았다. 그 이유는 비잔틴 제국에서 이단으로 정죄(定罪)된 다양한 이단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피신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함마드는 기독교 이단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출처 불명의 많은 문서들과 이교도의 시각에서 기록된 신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런 것들을 정통 기독교라고 생각하였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슬람의 견해는 당시에 아라비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던 컬리리디아니즘(Collyridianism)이란 종파에 영향을 받았다. 이 종파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숭배하였다. 꾸란에서 삼위일체를 성부, 성모, 성자로 이해했던 것은 바로 이 종파의 영향이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꾸란의 묘사는 당시 아라비아 지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본질상 도세티즘(Docetism)에 속한 영지주의적 기독론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 무함마드는 기독교 이단들의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비시니아(Abyssinia)왕조는 단성론자(예수 그리스도가 단성, 즉 신성만을 갖는다고 함)들이였다. 시리아의 갓산 왕조도 단성론자들이었다. 무함마드에게 영향을 끼쳤던 또 하나의 중요한 이단은 에비온(Ebionites)파였다. 이슬람에서 예수님을 보통 인간보다 영적으로 우월하지만 그것 외에 특별한 점이 없는 존재로 해석하였다. 이는 에비온파의 영향 때문이다. 에비온파는 그들만의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에비온파가 초기 교회사에서 이단이 된 것은, 기독교와 유대교가 혼합된 종교였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이였던 카디자(Khadija)는 에비온파 신자였으며, 무함마드에게 종교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와라까 빈 나우팔(waraqua bin naufal)은 카디자의 사촌으로서 에비온파의 사제였으며 메카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였다.

4. 꾸란에 나타난 기독교 이단들의 영향

1)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
꾸란 9장 28절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모세와 아론의 누이인 미리암이라고 알고 있었다. 따라서 꾸란에 마리아는 이므란(Imram)의 딸로 묘사되어 있다(꾸란 19:30). 이므란은 아므람(Amram)의 아랍식 표현이고, 구약성경에서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의 아버지”(민 26:59)다. “아론의 자매”는 미리암을 부를 때(출 15:20) 사용되는 것이다. 꾸란(3:35~36)에 이므란의 아내가 마리아를 낳은 후에 마리아를 성전으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넘겨주었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Zacharias)가 마리아를 지성소에 두었고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으나, 천사가 매일 마리아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이슬람에서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을 한나라고 한다. 사가랴가 마리아의 보호자가 되어 성전에서 키웠다거나, 마리아가 야자수나무 아래에서 예수님을 낳았다(꾸란 19:21~26)는 이야기는, 위경(僞經)인 <야고보복음>(Protevangelium of James)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2)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꾸란(꾸란 3:46)에 의하면, 예수가 아기 때에 요람에서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가 임한다. 실제로 꾸란 19장 30절부터 요람에 있는 예수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내용은 아랍어로 번역되어 있었던 <시리아어로 기록된 예수의 유아기복음서>(The Syriac Infancy Gospel, Injilu ‘t Tufuliyyah)의 첫 번째 장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꾸란에 예수가 유년기 때 진흙으로 참새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꾸란 3:49, 5:110). 이 내용은 외경(外徑)인 <도마가 쓴 예수의 유년기 복음서>(Thomas Gospel Of The Infancy Of Jesus Christ) 2장 4절에 기록되어 있다.

3)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부정
꾸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부정한다(꾸란 4:157). 예수는 죽지 않고 승천했을 뿐이다(꾸란 3:55). 또한 예수는 반드시 모든 인간들처럼 죽어야만 한다(꾸란 19:33). 왜 예수가 재림하여 반드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성스러운 목수 요셉의 죽음>(The Decease of our holy Father the old man Joseph the Carpenter)이라는 위경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랍어로 쓰인 책 31장에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과 엘리야가 세상에 내려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콥트 문헌인 <잠든 마리아의 역사>(The History of the Falling Asleep of Mary)라는 책에서 이 구절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에녹과 엘리야)은 죽음을 맛보기 위하여 다시 땅에 내려와야 한다.”고 되어있다. 꾸란에는 두 번(꾸란 3:185, 29:57)이나 “모든 영혼은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4) 밤하늘의 여행
꾸란 17장 1절을 보면 무함마드가 천국을 다녀왔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밤에 부라끄(Buraq, 노새보다 작고 당나귀보다 크며 하얀색으로서 날개가 달린)라는 동물을 타고 시내산을 거쳐서 예루살렘의 알 끄사 사원(Al-Aqsa Mosque)까지 날아갔으며, 그곳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7층천을 다니면서 각 층에서 서로 다른 선지자들을 만났다. 세례 요한과 예수는 두 번째 천국에, 아브라함은 가장 높은 일곱 번째 하늘에 있었다. 여러 선지자를 만나고 다시 그날 밤에 메카로 돌아왔다는 것을 밤하늘의 여행(Miraj)이라고 부른다. 이 밤하늘의 여행은 <아브라함 성서>(Testament of Abraham)라는 위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5) 저울
꾸란의 여러 군데에서 심판의 날에 저울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꾸란 7:8~9; 21:47; 42:17; 101:6~9). 심판 날에 저울에 달아 보는 이슬람의 개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이 내용은 <아브라함 성서>(Testament of Abraham)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은 이집트에서 기록된 것으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저자가 2세기 혹은 3세기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사람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한다는 개념은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가지고 있었다. B.C. 2500년경의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삽화인 사자의 서(Book of Dead)의 ‘심판 장면’에 저울이 등장하고 있다. 심판 날 왕좌에는 오시리스(Osiris)가 재판관처럼 앉아서 저울의 결과를 기록한 토트신(Thoth)의 두루마리에 따라 죽은 자의 영혼을 다룰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삽화와 <아브라함 성서>와 꾸란의 내용을 비교하면, ‘저울’에 관한 내용이 고대 이집트 신화로부터 가져온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 성서>에 기록된 콥트교인들의 생각이 무함마드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압둘 알 마시(Abd al-Masih)에 의하면 꾸란의 약 60%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하였고, 꾸란의 약 8%가 신약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이 꾸란과 이슬람에 미친 영향력이 없는 대신 외경과 위경, 그리고 기독교 이단들의 교리가 꾸란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꾸란에 의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17번 부정한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다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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