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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이베리아 반도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오토만 제국이 동유럽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서유럽의 끄트머리인 스페인에서는 이슬람이 세운 코르도바 왕국이 쇠퇴해가고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는 8세기 이슬람에 정복된 이래 기독교와 무슬림과 유대인이 공존하며 지내는 땅이었다. 무슬림 사라센 제국인 코르도바 왕국은 세기가 지나면서 위축되어 갔고, 9세기가 되면서 반도 북부에서는 기독교 왕국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1100년대가 될 때 이베리아 반도는 북부의 기독교 왕국들과 남부 무슬림 왕국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북부지역을 삼분하면서 균형추를 이루던 나라가 서부의 포르투갈 중앙의 레옹 지역, 카스티야 동쪽의 아라곤이었다.

세 왕국은 반도 남부의 무슬림을 몰아내면서 왕국을 확대했는데 그중 카스티야 왕국은 중부의 톨레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바로 이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의 대모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면서 근대 스페인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사벨라(Isabella, 1451~1504)는 가장 부강했던 레옹-카스티야 왕국의 공주로 태어난다. 이사벨라는 문학과 철학은 물론 음악, 법률 등을 모두 섭렵한 지성인이었다.

그녀의 오빠인 헨리케 4세는 이사벨라를 정략 결혼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려 했지만 이사벨라는 자신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한다. 그가 바로 아라곤국의 왕자 페르디난드 2세(Ferdinand Ⅱ of Aragon, 1452~1516)이다. 1469년 10월 15일 카스티야에서 비밀리에 만나 단 하루 동안 대화를 나누고 4일 후에 전격적으로 결혼한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안 그의 오빠 헨리케 4세는 분노했지만 혼인 서약 때문에 결혼을 인정해야 했다.

결혼 5년 후인 1474년 국왕 헨리케 4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이사벨라는 23살에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었다. 한 살 어린 남편 페르디난드도 5년 후 아라곤의 왕위에 오른다. 이 부부의 딸들은 각국의 왕비가 되었고 한 세대 후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의 외손자 카롤(charles, d.1558)은 두 왕국을 물려받아 통일 스페인 왕국을 수립한다. 스페인의 첫 국왕으로서는 카롤 1세였으나 신성 로마제국 황제로는 카롤 5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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