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다시 개혁으로] (17)우리는 공생관계입니다

사진❶ 좋은 만남은 행복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에게는 세 분의 아버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그 누구, 그 무엇과 감히 견줄 수 없는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둘째, 우리를 낳아주신 육신의 아버지이십니다. 셋째, 자신의 신앙생활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담임목사님입니다. 물론 담임목사도 그 교회의 교인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담임목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교회생활과 신앙인격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목소리, 또는 행동까지 거의 닮아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담임목사에게도 좋은 당회원 및 성도들을 만나는 것은 목회에 있어서 복 중의 복이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의도적으로나 고의적으로 목사에게 나쁜 짓을 하는 성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누군가 나쁜 성도가 된 데는 아마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담임목사를 존경하며, 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동행을 하려는 당회원들과 성도를 만나는 일은 행운을 넘어 행복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교회’에서 ‘위대한 교회’로 성장하는 비결은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일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좀 늦더라도 같이 가는 것입니다. 공생관계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끼리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준행해나가는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진❷ 서로 싸워대는 한국교회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느 담임목사가 당회원과 성도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종인데 어디서 감히…내 말대로 하지 않으려면 다른 교회로 가. 가도 돼!”라고 야단친다면 그것은 강요이며, 언어폭력이고, 영적인 폭행입니다. 반대로 당회원으로서 혹은 성도로서 담임목사를 쥐 잡듯 괴롭히며, 자신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도록 강요하고, 예배진행과 강도권까지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월권이요, 현대판 사울왕이며, 독선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부모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또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자신 있게 설교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를 너무 쉽게 버리고, 또한 자녀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자기 부모를 죽이기도 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시대적 추세가 이미 교회 안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아비와 같은 담임목사 그리고 자녀와 같은 성도들 사이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서로 극렬하게 대치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흉한 모습입니다. 자기의 주도권과 승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교회법과 사회법으로 서로를 고소 고발하는 일이 너무나 쉽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사진❸ 부족하기 때문에 ‘함께’ 있고, ‘함께’ 가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정작 본인들은 삼위각체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자, 교회 바깥의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며 별의 별 말들을 다 쏟아놓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적지 않은 교회들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런 싸움은 과연 개혁일까요?
솔직히 온전한 담임목사, 당회원, 성도란 어느 지상교회에서든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느 교회, 노회, 총회에서 서로 동역하는 이유는 ‘온전해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라며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죽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공생관계입니다. 동시에 영적인 가족입니다. 가족 중에서도 동행 및 동맹을 넘어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 된 혈맹관계의 가족입니다.
이것을 침 한 번 삼키는 순간에도,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언행을 우리가 새롭게 보인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모든 국민들 앞에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한국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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