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다시 개혁으로] (16)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사진❶ 아기가 걸음마를 하며 다가올 때 부모의 기쁨이 어떠할까요

다 큰 어른이야 두 다리로 원하는 곳 어디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갓 돌이 된 아이는 단 한발자국도 치열한 고민과 큰 노력 없이는 내디딜 수 없습니다. 어린 자녀가 처음으로 저 멀리서 부모에게 스스로 걸어와 안길 때의 그 기쁨, 자녀를 키워본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에게 안기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를 번쩍 들어 자신 앞으로 데려와 안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것은 단순히 안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걸리더라도 또 조금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걸어와 안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인 우리를 향해 보여주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요구를 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그런데 이 요구를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교회냐? 그게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말이 난무할 테니까요.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완전하고 거룩한 모습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 원하셨더라면, 부모가 아이를 번쩍 들어 데리고 오는 것처럼 우리를 처음부터 아예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셨겠죠.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한걸음씩 내디디며 때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온전함으로, 거룩함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진❷ 온전함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바로 거룩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온전함과 거룩함으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신앙의 걸음마를 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로 우리의 거룩함을 판단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예수님처럼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과 같은지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날마다 한걸음씩 나가고 있는지 여부와 그 과정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장 지금 모습은 추악하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면 지금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그럴듯한 그리스도인 같지만, 고작 그 상태에 만족하며 실제로는 세상적인 목표만을 위해 밤낮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그 누구를 더 거룩하다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가 정말 의인이어서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인이고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냥 ‘너 의인해라’ 말씀해주셨기에 의인이 되고 천국에 가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미 구원 받았다고 스스로 의인인양 어깨에 힘 주면 아니 될 줄 압니다.

 

사진❸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듯, 다시 비상해야 할 한국교회
 
마찬가지로 우리 삶도 그 자체가 온전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시며 주님께서 ‘너, 거룩하다’라고 해주신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절대 기준을 낮춰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온전함을 위해 하루 하루 십자가를 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목표로 삼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한걸음 더 나아갔다면, 때론 세상이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다 말씀하시며 흐뭇해하실 줄 믿습니다.
나아가 이 거룩함이 회복될 때, 세상으로부터도 손가락질이 아닌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 밖에 계신 분들 뿐 아니라, 이미 섬기던 교회를 떠난 소위 ‘가나안 교인’들이 심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교인들, 특히 교계와 총회 및 신학교에서 눈에 띄게 활동하는 분들이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성경에 근거한 무슨 특별한 온전함과 거룩함을 기대하기보다는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상식 수준만이라도 통하는 사람들이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재활치료실에서 마치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다시 걷기 연습을 시작하는 환자들이 그러하듯, 넘어졌던 우리들도 그렇게 걷기 시작해야 합니다. 드넓은 창공을 향해 다시 한 번 힘차게 비상하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늦었다 할 지금이 바로 또 다른 시작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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