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증인들(히 12:1~3)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본받을 만한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린 수많은 증인들을 소개합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도 이런 믿음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의 본을 따라 배워야 할 역사의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를 통해 믿음의 증인들을 열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벗어 버림입니다.

곧 이어 12장은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종교개혁자들은 벗어 버림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1517년 10월 마지막 날 작은 대학도시 비텐베르크의 교수 루터가 대학 교회 문에 95개의 항의문을 게시했습니다. 그 항의문은 근처 지역에서 벌어진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항의문은 순식간에 독일 전역에 출판되어 퍼져 개혁의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루터는 이후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여러 차례의 논쟁을 거치며 자신의 개혁 사상을 더 견고하게 주장했습니다. 교황은 결국 황제를 통해 루터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1521년 3월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회의에 호출당한 루터는 황제와 최고 권력자들 앞에 섰습니다. 황제는 종교개혁사상을 주장한 모든 책들을 철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루터는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이런 답변은 모든 기득권과 장래의 포기를 의미했습니다.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바른 양심을 지키려 했던 루터의 담대한 선언을 통해 종교개혁이 계속 전개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다시 한 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진리를 위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담대함은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담대함이 아닙니다. 도리어 복음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유익과 필요를 내어 놓을 수 있는 담대함입니다.

히브리서 12:1은 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기본 조건으로 가장 먼저 '벗어버림'을 말씀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루터에게 '얽매이기 쉬운 죄'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사제로서 안정과 평안을 누리며 사는 보장된 삶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벗어버린 '무거운 것'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당할 수 있는 고난과 핍박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지금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더 할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무엇을 내려놓을까를 점검해야만 합니다. 내려놓을 때, 벗어버릴 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비로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라톤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많은 짐을 챙기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경기 주최측에서 다 준비해 줄 것을 믿고 최대한 간단한 복장으로 경기에 임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줄 믿고 되도록 단순하고 분명하게 믿음의 경주에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챙겨 놓은 많은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우리를 온전히 벗어 놓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 12:2)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의 설교와 사역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려 했습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은 수많은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과 교회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을 성인으로 모셨습니다. 성인들의 삶의 공로가 지금 신자들의 구원에 유용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마리아 숭배가 조장되었습니다. 예배가 변질되었습니다. 미사 때 받는 떡이 예수님의 몸이며 그 몸을 먹으면 남아 있는 우리의 남은 죄책을 해결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반면 미사나 고해성사 등 사제들이 제공하는 성사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천국이 아닌 연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연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천국으로 가게 하려면 교황청에서 발행한 면죄부를 사야 한다고 선동했습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런 우상숭배에 맞서 바른 예배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교회가 예배를 핑계로 예수 그리스도마저 도구로 삼아 신자들의 양심을 속박하는 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구원을 받기 위한 공로의 행위가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성도들의 감사와 헌신이어야 했습니다. 예배에서는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선포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감사가 드려져야 했습니다. “성례의 본체 또는 실체는 그리스도라고 나는 주장한다. 성례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견고성을 지니며 그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기독교강요> 4권 14장 16절)

바른 예배와 회복을 위해 칼빈은 선포되는 말씀 중심의 예배를 시행했습니다. 평생 매주 정해진 본문을 순서에 따라 강해하는 연속강해 설교를 실천했습니다. 그의 연속강해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였습니다. 주중에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꾸준히 강의했습니다. 칼빈의 지속적인 설교와 강의를 통해 제네바가 변화되었습니다. 1559년 제네바에 세워진 아카데미에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 훈련 받은 설교자들을 통해 유럽 각국에 개혁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을 통해 종교개혁이 더 확고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성도들과 교회에 사명으로 주신 믿음의 경주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교회의 증거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확증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복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기차역 안내소에서 사람들은 기차 시간과 승강장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만일 안내소 직원이 기차 시간과 승강장은 제대로 말해주지 않고 역에 새로 생긴 편의시설이나 새로 나온 협찬 상품만을 홍보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잠시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 수 있겠지만 결국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해 실망하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의 다른 것을 자랑하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는 있겠지만 결국 빛과 소금으로서의 본분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우리 교회가 바라보며 자랑하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지 점검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믿음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내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릴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그리스도는 보좌 위에 앉으신 영광의 주님 이전에 고난을 참으신 인내의 주님이십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브리서 12:3)

종교개혁자들은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당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 장로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존 낙스는 많은 고난을 인내했던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는 로마 가톨릭 왕비와 교권에 도전한 사람들을 위해 설교했다는 이유로 19개월 간 프랑스 함선의 노예로 노를 저으며 복역했습니다. 석방되어 잠시 잉글랜드 교회의 목회자로 일할 수 있었지만 로마 가톨릭인 메리 여왕이 새로 즉위하자 모든 사역과 재산을 포기하고 피난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피난 중에 담당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피난민 교회 사역도 그를 시기하고 비난하는 국교회주의자들에 의해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낙스는 자신을 말씀의 나팔수로 부르신 소명을 붙잡았습니다. 언젠가 고국 스코틀랜드에 돌아가 진리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세우게 하시리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558년 고국으로 돌아온 낙스는 종교개혁 세력이 승리하고 스코틀랜드가 새로운 개신교 국가가 되는 과정에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560년 그는 피난 기간 제네바에서 보고 경험한 장로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장로교회는 민주적인 대의제도와 국가로부터 교회의 독립적인 치리를 실시했습니다. 장로교 제도는 어떤 사람도 어떤 계급도 교회를 주장하지 않고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신학적 목적을 지향했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지체들은 권한과 역할을 상대화하고 제한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스코틀랜드 교회 최고의 인물인 낙스 자신이 어떤 높은 직책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지인 에든버러 세인트자일스 교회의 설교자였을 뿐이었습니다. 낙스는 자신의 강단에서 담대하게 회개하지 않는 로마 가톨릭 왕실과 헌신하지 않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진리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여왕의 위협과 귀족들의 회유가 있었지만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드러나시도록 자신의 무덤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수많은 위협과 비난과 회유와 유혹이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와 과학적 사고가 대세라고 말하는 이 시대 조류 속에서 성경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우리를 드러내고 높여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유혹하는 현대의 상업주의와 성공주의 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온전히 내어 드린다는 것은 어쩌면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았던 종교개혁자들의 유산 위에 우리는 장로교회로 세워져 있습니다.

장로교 제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교회의 머리로서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드러내려는 신학적 목표를 계승합니다(에베소서 1:22-23). 모든 은사와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여기고 감사로 그 목적에 맡게 올려드립니다. 스스로 권한과 역할의 한계를 지우고 모든 지체들을 존중하며 다만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합니다. 우리의 상급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하늘에 있음을 소망하며 이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인내의 경주를 잘 달려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한국 장로교회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선진들이 남겨 준 신앙의 유산들을 되돌아보기 원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통치하는 그분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해 삶과 죽음을 드렸던 공동체의 실천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그 믿음의 선진들처럼 후손들과 세계 여러 교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 하나님께 칭찬들을 수 있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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