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수도원주의를 확산시킨 대표적 인물은 성자 안토니우스(Antonius/Anthony)였다. 그는 251년경 나일강 하구 헤라클레오 폴리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많은 유산을 상속 받는다. 20살이 되던 해 그는 성경을 읽다가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읽고 이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한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10:21) 이 말씀은 안토니우스뿐만 아니라 이후 많은 부자들을 광야세계로 초청한 구절이다.

약 270년 뒤에 성자 베네딕트가 320년 뒤에는 교황 그레고리가 950년 뒤에는 프랜시스가 이말씀에 붙들려 광야사람이 된다. 이후 안토니우스는 곧바로 가산을 정리, 누이와 빈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이집트 사막에서 80년이란 기간을 수도에 전념하였다. 이 기간 동안 안토니우스와 악마 사이에 수많은 영적전쟁이 시작되었다. 안토니우스는 광야에서 은화가 가득한 쟁반을 발견하였을 때 그냥 지나치면서 “악마여! 그대가 나를 돈을 사랑하도록 유혹하여도 소용이 없노라”고 했다.

안토니우스는 수도생활로 큰 영적 능력을 얻어 성자로 추앙 받게 된다. 찾아온 병자들이 치유되었음은 물론이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 아들들은 이 사막의 수도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를 찾아온 제자들이 그의 말년에는 5000명이나 되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는 아버지를 뜻하는 압바(Abba)로 불리웠고 이후 이 용어는 수도원장이란 고유명사가 되었다. 안토니우스는 수도원 운동(Monasticism)의 아버지가 되었다. 매일 소량의 빵만 먹고 40일 금식을 수차례나 하는 극도의 고행이었음에도 105세나 살았고, 그는 임종 직전 “나를 절대로 우상화하지 말고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했다.

318년 안토니우스에 의해 발전된 수도주의는 파코미우스(Pachomius, 290~346)에 의한 규율(Rule)에 입각하여 이집트 사막 타벤니시(Tabennisi)에 세워지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후 수도원들은 그 규모가 커지고 부를 축적하면서 본래의 이상을 망각하게 된다. 수도원 자체가 권력과 부요의 창고가 되고 있었다. 이런 시류에 따라 ‘영성’과 ‘수도사’라는 두 용어 사이는 점차 괴리현상이 생긴다. 이후 수도원들은 문명의 빛으로 기능하며 1000년이나 지속된다. 그러나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수도원 운동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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