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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사회에 파고든 이슬람 ⑥ 이슬람은 왜 테러하는가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이슬람 중심 세계질서 목표 “폭력 배제한 평화 없다” 확신

사이드 쿠툽의 급진 사상을 이념 전쟁 모티브 삼아 …
이슬람 영광 재현 위한 원리주의 운동이 순교 미화, 테러 부추겨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전문위원)

지난 5월 22일 맨체스터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24일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자폭테러가 일어났으며, 5월 23일에 IS무장대원들이 필리핀 민다나오의 마라위 시를 점령하여 필리핀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투가 벌어져서 44명이 사망했다. 그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나던 테러가 전 세계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지난 해 8월 미국태평양사령관 해리 해리스(Harry Harris)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 격전지가 될 것이라고 염려했던 생각이 난다. 한국도 이슬람테러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2016년 1월에 외국인 근로자 7명이 IS에 가담한 사실과 함께 테러단체와 관련된 51명을 추방했다고 국정원이 발표했다.

미국 뉴욕에서 9.11사태가 일어난 후 폐허가 된 무역센터 잿더미 위에서 죽은 아들을 추모하며 한 여인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지만, 모든 테러리스트들은 무슬림이다”(All Muslims are not terrorist but all terrorist are Muslims). 사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을 구분하면 70%는 일반적인 무슬림들이다. 이들은 이슬람 문화에서 자랐기에 무슬림이지, 실제로 기도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슬람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는 무신론자 무슬림, 서구화된 무슬림, 이름뿐인 무슬림들도 있다. 15%가 종교적인 무슬림들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슬람 종교를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15%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과격한 무슬림들이다. 문제는 이 원리주의 무슬림 15%가 정권을 잡을 때, IS(이슬람국가) 혹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확산하는 운동으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이슬람은 왜 테러를 하는가? 그 원인을 살펴보자.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죽은 후에 그의 후계자들은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를 정복해 나갔다. 그렇게 성장하던 이슬람은 19세기와 20세기 오스만 제국의 분열로 인하여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후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Sultan)제도가 폐지되면서 이슬람의 칼리프(Khalif)국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칼리프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정치와 종교에 있어서 권한을 계승한 후계자를 말한다. 그 후 서구 제국주의에 눌려있던 이슬람의 부흥을 꿈꾸며 1928년에 이집트에서 이슬람 형제단이 창설되었고 글로벌 이슬람 운동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드를 통하여 전투실전 능력을 갖추었으며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반서구 패권주의를 위협하는 대항세력으로 성장해왔다. 이슬람 세계의 부흥을 추구하는 모든 세력들이 공통의 목표로 삼는 것은 결국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재건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대 이슬람원리주의 운동의 중심인 이슬람 형제단에서 이슬람 급진 사상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시킨 사람은 사이드 쿠툽(Sayyid Qutb, 906-1966)이다. 기독교가 믿음을 강조하는 것에 비하여 이슬람은 행동, 즉 알라(Alla)의 뜻을 따르고자 행동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이슬람은 율법을 따르는 유대교에 더 가깝다.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행동하고, 싸우고(jihad),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고, 이슬람 종교를 수호하고 전 세계를 이슬람화 하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슬람의 급진적 성향은 자기중심적인 서구에 대한 적대감, 서구제도의 구조적 모순에 힘입어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새로운 기류이며, 서구의 식민 지배와 근대화가 야기한 빈곤층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대를 뛰어 넘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공통점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이름과 목표, 양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동일하게 원초적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알라의 통치만이 완전하므로 민주적 결정도 제동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지하드를 이슬람 세계의 평화를 위한 이슬람 세계의 혁명으로 규정한다. 사이드 쿠툽은 “이슬람의 교리에 근간을 둔 질서를 성취하려면 지하드가 불가피하므로 폭력을 배제한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가 벌이고 있는 이념의 전쟁에 모티브가 되었다. 사이드 쿠툽에 따르면 이슬람 원리주의와 이슬람의 차이는 없고 오로지 하나의 이슬람만 있을 뿐이다. 이에 동감하는 사람은 진정한 ‘신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슬림도 예외 없이 이슬람의 원수가 될 것이다.

1. 이슬람과 지하드

아랍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지하드’는 ‘자아드(jaahad, 스스로 노력하다, 애쓰다)’라는 동사의 동명사(masdar)이고, 그 뜻은 ‘애씀, 노력, 또는 불만, 불찬성 및 비난의 대상에 대하여 투쟁하는 데 자신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슬람 연감에는 지하드를 “싸우다”로 정의한다. 이것은 전쟁 뿐 아니라 개인 또는 공동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다른 형태의 전투를 포함하는 꾸란의 개념으로서, 무슬림들의 안전을 추구하고 이슬람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의미로 확대됐다.

이슬람에서 지하드는 단 두 가지 상황에서만 허용된다고 한다. 첫째는 방어할 때다. 지하드는 공격적인 전쟁이 아니라 방어적인 전쟁이다. 무슬림들은 공격을 받았을 때, 또는 그들의 자유, 평화, 정의를 훼손당했을 때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해 보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슬림은 수많은 침략 전쟁에 참여했고, 그 결과 영토와 부를 얻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롤란드 아모어(Roland Armour)에 의하면, 7세기 이슬람의 팽창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지하드의 한 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이슬람의 직접적인 법의 통치를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잘못되었다는, 무슬림들의 논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지하드는 무슬림들이 샤리아 아래에서 유토피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세계 모든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나는 테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일으킨 지하드다.

2. 이슬람의 구원관

이슬람에 있어서 알라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 이유는 이슬람이 행위종교이기 때문이다. 꾸란에 의하면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다음 4가지가 있다.
첫째, 숙명론에 근거한 ‘알라의 일방적인 선택’이다. 인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알라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숙명론이라고 한다. 숙명론에 의하면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구원의 여부를 알 수 없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러 가로되 알라께서 명령한 것 외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있을 수 없나니 그분은 우리의 보호자이사 믿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분이시라”(꾸란 9:51)

둘째, 선행을 많이 하는 것이 천국에 가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무슬림들은 착하게 살려고 애를 쓴다. 그 이유는 착한 일을 많이 할 때 천국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은 “착한 일을 기록하는 천사와 악한 일을 기록하는 천사가 항상 있기에 모든 행동을 기록해, 마지막 심판 날에 착한 일과 악한 일을 저울에 달아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천국 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때 그의 선행이 많았던 자들은 번성할 것이며 그의 저울이 가벼운 자들은 그들의 영혼을 잃고 지옥에서 영생하며”(꾸란 23:102-103)

셋째, 메카로 성지순례를 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가능성에 관해서는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지난 9월 이슬람의 성지순례 기간 중에 메카에서 크레인이 무너져서 100명 이상이 죽고, 1000여 명이 압사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러시아 이슬람 자치공화국의 정부 수장인 람잔 카디로프가 방송에서 “사우디아리비아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는 알라의 선물”이라고 말하였다. 그 이유는 “성지순례를 떠나는 무슬림들은 바로 그곳에서 죽고 싶어하기 때문에, (성지순례 도중 압사당한 것은) 알라의 선물이며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한다”고 하였다. 그 이유가 꾸란에 있다. “그곳에는 예증으로서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나니 그곳에 들어간 자는 누구든 안전할 것이며”(꾸란 3:97)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성지순례 중에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알라와 이슬람을 위한 전쟁, 즉 지하드에 참전했다가 ‘순교’할 경우다. 꾸란의 많은 구절이 이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로 하여금 알라의 길에서 성전케 하여 내세를 위하여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알라의 길에서 성전하는 자가 살해를 당하건 승리를 거두건 알라는 그에게 크나큰 보상을 주리라”(꾸란 4:74), “알라의 길에서 순교한 자가 죽었다고 생각지 말라 그들은 알라의 양식을 먹으며 알라의 곁에 살아 있노라”(꾸란 3:169) 이처럼 이슬람의 알라는 알라와 이슬람을 위하여 싸우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보상을 준다. 이러한 내용의 꾸란구절을 칼의 구절(Verse of Sword)라고 하는데 꾸란에 칼의 구절의 109구절이나 된다.

3. 순교를 통하여 받는 보상들

꾸란에 따르면 순교하는 것은 알라에게 가장 큰 영광이 된다. 순교를 뜻하는 헬라어가 마르투리온(marturion)인데, 그 어원은 ‘증인’이라는 뜻의 ‘마르투스’(martus)다. 이슬람에서도 증인에 해당되는 단어가 샤히드(shahid)이며, 순교(martyrdom)란 말도 무슬림의 믿음의 고백(shahada, 샤하다)에서 나왔다. 그 고백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이다”라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지하드를 할 때에 그 주된 동기는 “지하드에서 죽은 사람, 즉 샤히드라 불리는 사람은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Hadith)에 의하면 알라를 위하여 지하드를 하다가 순교한 사람은 6가지 상을 받는다. 첫째, 순교자는 피를 흘리자마자 죄 사함을 받고, 둘째, 지옥의 징계를 면제받고 천국에 거하게 되며, 셋째, 더 큰 테러에서 보호를 받으며, 넷째, 세상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좋은 홍옥(Ruby) 왕관을 머리에 쓰게 될 것이며, 다섯째, 72명의 처녀들과 결혼하게 될 것이며, 여섯째, 친척들 70명의 중보자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꾸란에 묘사된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술과 젖과 꿀이 흐르는 정원(꾸란 47:15 상반절)에서 섬세한 비단옷을 입고(꾸란 44:53), 금으로 장식된 침대에 기대어(꾸란 55:54), 마음껏 과일을 먹으며, 소년들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고(꾸란 56:17-18), 취하지 않는다(꾸란 37:47). 알라가 천국에 오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같은 나이의 새로운 배우자들과 어울린다(꾸란 56:35-37).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배우자에 대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뉴욕 9.11테러에 참여하여 비행기를 납치하고 자폭한 대원 가운데 이집트인 아타(Atta)의 유품인 약 5페이지의 메모에는, 어떻게 비행기를 납치하고 자폭할 것인지를 요약해 놓은 상부의 지시와 자신의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침착해라. 침착해라. 누구나 다 죽는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를 곧장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알라는 위대하시도다. 알라여! 나의 죽음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이 이 땅에 편만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 행위를 통하여 나를 영접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이슬람 전사로서 테러를 하면서 성스러운 전쟁에 참여한 자신을 알라가 받아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슬람이 성장할수록 테러의 위험은 높아만 간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은 긍극적으로는 이슬람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며, 개인적으로는 이슬람의 구원과 관계가 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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