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사진에세이/다시, 개혁으로] (12)나보다 남을 '낫게?', '낮게?'

사진❶ 한없이 교만하며 높아지려는 우리 마음.

세계적인 문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늙은 삼촌 악마는 젊은 조카 악마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신자가 겸손해지면 위기감을 갖고 긴급히 대응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자기가 겸손해졌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해지다니…’하는 자부심과 만족감을 갖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교만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신자가 이것조차 유혹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한다면, 자신이 이렇게 근신하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들면 된다.”

참으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탁월한 비유입니다. 이처럼 ‘교만’은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경계대상 1호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만이란 단어는 라틴어로, ‘수페르비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는 ‘자기 높이기’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즉,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높이려고 하는 것이 교만인 것이죠.

 

사진❷ 겸손하며 비판이 점점 없어져야 할 우리의 삶.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러나 우리는 ‘낫게’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사람 인(人)자에 하나(一)를 더 갖다 붙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늘 자기 자신이 모든 사람 ‘위에’ 있고 싶어 합니다. 발음도 같아서 속이기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높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늘 자신의 뜻이 옳은 것으로 착각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만과 분노를 표현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한 사람이라도 불만을 갖고 있으면, 그것이 전체의 의견인양 소문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교만이 이곳저곳 숨겨져 있는 교회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교만의 목적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뿐입니까? 교만은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기가 교만인지도 모르고, 늘 남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아직 신앙이 많이 부족해서 그래…기도 더 해봐…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칭찬에도 인색합니다. “그거 네가 한 거 아니야…하나님께만 영광 돌려야 해….” 맞는 이야기, 그러나 참 기분 나쁘게 합니다. 입에는 늘 불평이 있습니다. “거봐, 내가 말 한대로 했으면 됐을 것을…저래서 뭐가 되겠어?”

 

사진❸ 우리는 경쟁대상이 아니라 한 가족.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들은 경쟁상대가 아니라, 한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옆 사람을 통해 내가 더 예수님 잘 믿는다는 것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수님 잘 믿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가족입니다. 옆 사람이 뒤쳐져 있으면 내가 속도를 늦춰서라도 같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내 옆에 성도요, 우리 공동체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긍휼로 교정시켜주며, 그들로서 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인내로 견디며, 사랑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정시켜 주실 때까지, 아니면 마지막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으시고 쭉정이를 날려버리시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리에서 공동체를 섬기는 자에게 결국 가장 높은 자리를 허락해 주실 분”임을 믿습니다. 이 글을 읽는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는 지적질보다는 칭찬을, 구시렁거리기보다는 격려를 통해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교단과 총신, 그리고 일부 교회들을 통해 들리는 깊은 신음소리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을 낫게 여기지 않고, 남을 낮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남을 낫게 여기고, 자신을 낮게 여기면 분명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교단, 총신, 교회를 보는 자신의 마음과 언행 그리고 결단이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평가가 크게 달라지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나 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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