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개혁자 루터는 1524년 <기독교적 학교의 설립과 그것의 유지에 관하여 전 독일의 시장·시평의회의원에게 보내는 글>이란 제목의 긴 글을 쓴다. 루터는 이 글에서 기독교 신앙이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 학교 교육임을 역설한다. 그는 시정부가 성벽을 쌓는데 재정을 쓰는 것보다 학교를 세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임무임을 피력했다.

그는 또 1530년에 <자식을 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한 설교>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자식을 취학시켜서 공부시키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의무교육을 말한 것이었다.

이런 루터의 주장은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영주들의 지역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실행에 옮겨진다. 당시 루터의 의무교육 제안은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시절 독일지역에서는 이미 사립학교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시당국에서 학교를 지어주면 수업료를 받아서 경영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다. 따라서 학교 운영자들은 건물 임대비와 학교 경영비용을 위한 재정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사립학교 운영자들은 교사들에게 줄 봉급 때문에 교육 대상 확대나 교육환경보다는 학교운영에 필요한 자금에 관심이 많았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길을 튼 사람이 루터였다.

루터는 시정부가 성당과 수도원의 재산을 접수하도록 제안한다. 그리고 확보한 자산으로 교직자들을 공무원화 하겠다는 것이 당시 루터의 생각이었다. 이런 루터의 생각은 지금까지 독일교육의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다.

루터의 의무교육 제안이 당시 영주들의 속셈과 맞아 떨어진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주들은 하층민의 대다수였던 농민들의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이들을 결집시킬 수단이 절실한 때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시당국의 처사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발목을 잡는 성당과 수도원의 재산을 시가 접수할 수 있다는 루터의 주장은 시 당국자들에게는 최고의 희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의무교육을 주장한 데는 개혁사상이 하층민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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