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총회 내 주요한 행사에 증경(부)총회장이 사라졌다. 신년하례회를 비롯하여 총회실행위원회, 총회장 취임감사예배 그리고 9월 셋째 주에 열리는 총회와 전국목사장로기도회까지 증경(부)총회장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총회에서 해마다 발행하는 <총회 회의결의 및 요람>과 <총회수첩>에도 엄연히 증경총회장과 증경부총회장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는데 각종 행사에 증경들은 없다.

매년 총회가 열리면 증경(부)총회장들은 언권회원으로 참석하여 안건이 결의될 때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총회헌법과 규칙, 총회결의 등을 정확하게 설명하며 주요한 결의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줬다. 또한 장내가 소란스럽다든가 재판이나 노회분립과 같은 첨예한 사안이 대립되면 해결자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어느해부턴가 증경총회장 예우에 관한 문제가 솔솔 불거지더니 최근에는 아예 증경(부)총회장들이 설 자리를 버린듯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민감한 안건이 토론되는 중에 증경(부)총회장들이 악뱡의 감초처럼 빈번하게 등장하여 회원들의 정서와 다르게 발언하는 것이 여러 사람의 눈에 거슬렸을 수도 있다. 순서도 없는데 터줏대감 마냥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총회본부 입장에선 현재 생존하시는 60여 명에 가까운 증경(부)총회장들을 매 행사마다 일일이 챙기기도 버거웠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건덕상의 이유나 해 총회 행위자로 간주하여 발을 묶어두는 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 어른을 모시려는 최소한의 예는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총회는 증경(부)총회장에 대한 예우는 고사하고, 이들의 흔적을 폄훼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권력 또한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꽃이 제 아무리 곱고 예쁘다 한들 때가 되면 시들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자라해도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이 이치다. 총회 내에서 지금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어른들’까지 무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담론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국가와 사회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총회가 총회답게 가려면 거창한 구호에 앞서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식견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 증경(부)총회장들에게 서운한 것이 있다면 대화를 통해 풀고 공식적인 행사나 자리에 증경(부)총회장들을 초청하는 것은 예를 갖춰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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