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사진에세이/다시, 개혁으로] (10)권위, 버리지 말고, 지킵시다

사진❶ 부모의 말씀에 별 관심이 없고, 자기만 좋으면 되는 세대

“아, 얼굴 저리 치워요….”
어디에 등장하는 말일까요? 한 기사를 보니, 아빠 얼굴을 밀어내며 짜증을 내는 아이들의 반응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그들은 아빠가 사진 한 장 찍자고 불러도, 한번 안아보자고 어깨를 끌어당겨도 눈 한번 제대로 안 맞추고 쌩하니 무시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친구와 장난감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과연 이것도 자녀의 권리이고 기호니까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도,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일까요? 과연 아버지의 모습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권위는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요?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는 정신이 있다면, 바로 ‘예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의’는 윗사람을 공경하는 삶의 태도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우리나라 사람만큼 예의 바른 사람들은 없습니다. 심지어 손을 들고 ‘헬로우(Hello), 굿바이(Good bye)’를 할 때에도 고개는 함께 숙여지니 말입니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만 끼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나친 예의’, 즉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로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현실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❷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제는 ‘권위’라는 말이 ‘기득권, 꼰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말로 조롱 받고 있습니다. ‘예의’라는 말이, ‘아첨, 타협, 당당하지 못한 태도’라는 말로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권위와 예의를 떠난 ‘거친 말과 독설’이 박수 받고 칭찬 받는 시대입니다. 더 이상 ‘권위’는 ‘권위주의의 산물’일 뿐, 어느 곳에도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부모의 권위, 선생님의 권위, 정치 지도자의 권위, 교회의 권위, 목사의 권위…. 모든 권위가 희미해졌습니다. 소통과 대화, 정말 중요합니다. 주장과 비판도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권위를 무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들은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지고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다소 불편한 말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밝혀둘 점은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권위가 다 옳다는 것도, 또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리하셨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자칫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섭리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❸ 권위를 인정하고 지킴이 절실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권위는 사람에 대한 권위가 아니라, 그 자리에 대한 권위입니다. 무조건적인 용서와 용납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와 태도입니다.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비겁함이나 타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탁월한 사람이라는 억지 해석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요한 신앙의 고백이자 표현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진리를 신실하게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위 없이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권위를 부여해주신 것이고, 교회인 우리에게는 세상의 모든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권위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을 일단 버립시다. 그리고 성경적인 권위를 되찾읍시다. “자기주장이 답이다!”고 외치는 시대에 편승하지 말고, 먼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며 그 가운데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시다. 그럴 때,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뜻을 밝히실 줄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권위는 구시대적 유물이 아닙니다. 권위는 권위주의와 분명히 다릅니다. 권위는 반드시 우리가 지켜야 할, 그리고 지켜줘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과 배려 속에, 예의와 질서를 지키며, 따뜻한 권위를 세워나갈 때, 하나님께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는 은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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